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나도 일곡동으로 이사 오고 싶다

순수산 2011. 10. 19. 14:24
느낌그리고소통

 


 

나도 일곡동으로 이사 오고 싶다


“어디에 사세요?”

“북구 일곡동에 삽니다.”

아, 그 학군 좋은 동네요.”

 

북구 일곡동에서 7년 째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누구를 만나든 ‘일곡동’에 산다고 하면 십중팔구 학군 좋은 동네로 알고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을 키우다 보니 정말 실감하게 되고 무시로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굳이 뉴스를 접하지 않더라도 위험천만한 환경에 노출된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다. 그런데 일곡동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교회와 운동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족한 과목 공부하기 위해 학원으로 가고, 교회에서 율동 등으로 건전한 교제의 시간을 갖고, 일곡근린공원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젊음이 참으로 아름답고 예쁘기만 하다.

 

북구 일곡동에 사니까 ‘무엇이 좋으냐’며 타 지역에서 사는 친구들이 말하면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일곡도서관 얘기로 일곡동 예찬을 늘어 놓는다. 처음 일곡도서관에 들어 갔을 때 서고에 쌓인 깨끗한 책들을 보면서 오싹할 만큼 좋았던 느낌을 전한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가만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많은 책들을 언제라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이 세상의 어떠한 부자도 부럽지 않을 만큼 좋았다.

사실 유별나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교회에서 낮 예배를 끝내고 바로 일곡도서관에 와서 저녁식사 하기 전까지 책을 읽는다. 이 시간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또한 일곡동에는 근린공원도 많다. 더욱 일곡도서관 옆 잔디 축구장이 생기면서 주민들은 앞마당처럼 자주 드나든다. 꼬마들은 푹신한 잔디가 좋은지 벌러덩 눕고 덤블링도 한다. 이웃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만남의 광장이 된 잔디구장으로 오면 된다. 

 

특히 추운 12월이 되면 일곡동은 각 교회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유난히 교회가 많은 일곡동은 사방을 둘러봐도 빨간 십자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텔과 술집과 안마의 네온사인이 아닌 십자가의 보호 속에 산다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다. 책 깨나 읽었던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시쳇말로 조금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나의 활약상을 들쳐보면 지적쾌락에 빠져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눈물도 피도 없는 냉혈 인간에다가 봉사는 내 사전에 없었고 불쌍한 친정어머니한테도 독한 말로 상처를 줬던 아주 정나미가 떨어진 인간이였다. 내심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말 잘난 사람은 잘난척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교회의 신도들을 통해서 인생을 배우게 되었다. 

 

신도들 중에는 말이 아니라 행위로 많은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 참 많다. 백만불짜리 미소로 교회를 환하게 비추는 모 의원은 누구보다도 교회 주변의 쓰레기를 가장 많이 줍는 성실한 사람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점심 식사 후 남자들이 하는 설거지를 깔끔하게도 잘 한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한테는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다. 이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김과 배려로 희망과 기쁨을 전하는 멋진 사람들이다. 진정한 높임을 받은 것이 어떤 것인지 이들은 애진작에 터득하고 있는 내게 본이 되는 사람들이다.

 

신도들은 자아도취에 빠져 허우적 대던 나를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을 갖게 했다. 죄인지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행했던 무수한 죄를 반성케해 나를 정결케 했으며 참다운 인간의 교제가 무엇인지, 더불어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기쁨 속에 살게 되고, 감사할 일들이 정말 많다. 내가 기쁘니 남편이 기쁘고 부모가 기쁘니 자녀가 기쁘다. 앞집이 기쁘니 뒷집이 기쁘고 아파트 주민이 기쁘니 일곡동 전체가 기쁘다. 지난 추석 때 시골에서 부모님과 전국에 살고 있는 형제들이 우리집으로 명절을 쇠러 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곡동 가이드 역을 자청했다. 운동 삼아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도서관을 보여주고 잔디구장을 보여주면서 일곡동이 살기 좋은 동네라는 것을 말해 줬더니 다들 한마디씩 했다.

“나도 일곡동으로 이사 오고 싶다”고.

 

000(북구 주부)

※이 글은 북소리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2008.  0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