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간식으로 지불한 컷트 값

순수산 2009. 1. 19. 11:51

누가 미용실을 “아줌마들의 공간”이라고 했던가요. 한 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가는 우리집 아저씨가 저보다 자주 가니 아저씨들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커서 파마를 싫어합니다. 생머리를 고집하며 생머리도 풀어 헤친 것이 아니라 늘 묶여있는 상태라 미용실 출입이 남편보다 적습니다. 제가 미용실에 가는 것은 앞머리를 일자로 가지런히 자를 때입니다.


적지 않는 이 나이에 저는 살아오면서 파마를 딱 세 번 해봤습니다. 20대 초반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처음 굵은 웨이브 파마를 했습니다. 주인장이 두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려 짠,하고 나온 작품을 보고 저는 기겁을 했습니다. 거울 안에 웬 40대 중년이 턱하니 있더라구요. 너무 어색하고 실망스러워 그 다음날 바로 풀어버렸습니다. 정글의 사자가 도시를 어슬렁거리는 꼴이였거든요. 그때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저는 파마는 먼나라 이야기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은 하나같이 염색을 해서 계절따라 유행따라 다양한 파마를 하고 산뜻하게 나타나서 저를 유혹하더라도 꾹 참았습니다. 참머리를 오랫동안 하고 다니면서 특별히 이 스타일에 소신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 스타일이 가장 타인들에게 혐오감을 덜 주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 후 단발로 잘랐더니 뒷모습이 완전히 중학생이였습니다. 나이 먹었다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 몇 년째 하고 다니다가 올해 초 약한 웨이브 파마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연말이 되어가니 거의 1년 동안 하고 다닌 셈이지요. 머리를 감으면 파마요 마르면 참머리가 되는 요술같은 스타일입니다. 저 같은 고객만 있다면 미용실 진작에 문 닫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앞머리는 손질해야 하므로 두 달에 한번씩 미용실을 찾아갑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자릅니다. 그러면 주인장께서 돈도 받지 않고 성심성의껏 잘라주고 눈썹까지 다듬어 줍니다. 어찌 기술자가 댓가도 받지 않고 공짜로 앞머리를 잘라주냐며 저는 부담이 되어 극구 컷트값을 주려고 하면 주인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니, 우리집에서 파마 한 사람들은 돈 받지 않고 앞머리는 다 잘라줘요.”


‘그거야 파마를 여러번 한 사람 이야기지’ 나는 일년에 파마를 한번 할까 말까, 하는 미용실에서 달갑지 않는 손님이 아닌가. 그렇더라도 앞머리는 잘라야 하고 주인장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서로 실랑이를 벌리다가 그 후로는 앞머리를 자르면 지하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를 사다 줍니다. 간식을 건네는 내 마음도 즐겁고 돈이 아닌 마음을 받은 주인장도 싫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미소와 간식으로 컷트 값을 합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