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조카,나의 엔돌핀

내 동생은 가문의 영광

순수산 2009. 3. 2. 15:18

 

 <동생의 걸작품 보물1호, 보물2호>

 

여동생이 ‘고마운 사람에게 전하는 사랑의 편지’를 교양잡지사에 보냈나보다. 본인 글이 실렸다고 읽어보라며 내게 책을 전해줬다. 책장을 받고 펼쳐 동생의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코끝이 찡했다.


“엄마같은 언니에게......4남매의 장녀로 7남매의 맏며느리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우리 언니. 언니는 어린 시절, 일 나가셨던 엄마를 대신해 나와 동생에겐 엄마 같은 존재였어. 그래서 어려서는 엄마보다 언니가 더 무서웠지만 지금은 고맙고 미안한 생각뿐이야. 지난해 언니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얼마나 놀라고 걱정됐는지 몰라. 이젠 양 어깨에 무거운 짐 내려놓고 언니 건강부터 챙겼으면 좋겠어. 고마워 언니.”


걱정거리도 많을텐데 내 걱정까지 줬으니 나는 못난 언니이다. 살가운 언니보다는 엄마보다 더 무서운 언니로 기억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과 나는 여섯 살 터울의 자매다. 나이 차이가 많아서 우리는 남들처럼 티격태격 싸우며 정든 자매가 아니다. 나는 동생에게 명령만 내렸고 동생은 순수히 따라줬던 조용했던 아이였다. 동생은 한번도 철부지 행동도 한적이 없다. 동생이 나를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할만 하다. 그동안 따뜻하게 대해준 적도 없었다. 주로 동생이 인생 상담을 해오거나 집안의 일로 조언을 구하거나 사회생활의 힘든 점을 토로할때도 친절한 언니가 되지 못했다. 남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무 사무적인 답변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연약하고 강하지 못했기에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야단쳐가며 때론 종아리에 피나도록 때려가면서 군기를 잡았는지도 모른다. 세심하게 보살펴 줄 여유가 없었다.


동생이 내게 전화를 하면 항상 나는 “왜?”하고 전화를 받는다. 2년 전쯤에 동생이 전화 받는 내 대응에 불만을 품고 서운한 심정을 전했다. 언니는 오랜만에 동생이 전화하면 왜,라는 말밖에 할말이 없느냐. 내 친구들은 언니랑 통화할 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즐겁게 웃으면서 통화하던데 우리가 자매가 맞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이 대답이 문제가 된다고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가 동생한테 전화한 적은 거의 없었고 주로 동생이 전화를 한 것이니 받는 나는 용건이 뭐냐, 왜 전화했냐, 이런 물음이였는데 동생은 천편일률적인 내 대답이 속상하고 억울했나보다. 그 뒤로 나는 동생한테 잘하려고 애를 썼다. 사춘기 동생도 아니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까지 있는 동생을 아직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한 언니에게 처음으로 맞장 뜬 일이였다.

 

 

<나의 엔돌핀 조카들>

  

형만한 아우 없다고 말하지만 때론 있다. 내 아우는 나보다 백배나 멋진 동생이다. 어릴적에 사고로 동생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으로 강한 의지력으로 동생은 험난한 장애를 극복하고 지금은 멋진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동생은 공부를 참 잘했다. 서너살 때인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공책에 알파벳같은 알아보기 힘들 글씨들을 써나갔다. 나는 동생의 불타는 향학열을 그때 알아봤다. 학창시절 공부뿐만 아니라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거의 취득했다. 이것으로 동생은 특채 공무원이 되었다. 동생은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서 당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경기를 치뤘고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던 자랑스런 동생이다. 동생은 우리 가문의 영광이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내 차의 카시트까지 직접 뜨개질을 하여 선물해준 여성스런 동생이다. 나는 수학공식처럼 복잡하게 엮어져 있는 난해한 뜨개질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동생의 이런모습은 가히 존경할만하다. 나와 15년 이상을 살아온 남편은 “우리 처제가 언니보다 훨씬 똑똑하고 야무지다.”며 처제의 열렬한 팬이다.


동생은 나를 아직도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투정한번 부리지 않았다. 동생을 대하는 것이 특별하게 나아진 것은 없지만 서로 나이를 먹으니 예전에 못한 말도 하게 되고 서로 안스러워 위로를 하게 되고 상부상조한다. 내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기에 우리에게는 ‘컴박사’로 통한다. 혼자 계신 친정엄마한테 나는 한번도 해드리지 못한  엄마 발톱 깍아드리기, 목욕할 때 등밀어 드리기, 엄마의 편안한 말동무를 해드리며 정말 효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예쁜 둘째딸이다. 겉으로만 강한 나는 사실 이런 세밀하고 상대의 필요 채우기를 잘 못한다. 그런데 동생은 나와 다르게 아기자기한 면을 갖고 있다. 엄마가 독한 큰딸보다 둘째딸의 집에 있기를 선호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모처럼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도 꼭 끝에는 연약한 엄마를 강하게 훈련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조교가 되어있곤 한다. 


여동생은 남자 형제들과는 다르게 어려도 서로 얘깃거리를 갖게 되어 나누게 되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도움이 된다. 내겐 이런 멋진 능력의 여동생이 있다는 것이 늘 감사하다. 그리고 동생은 모성애가 누구보다도 강한 엄마이다. 불편한 몸을 감수하며 보석같은 민기, 민채를 낳았다. 이 조카녀석들이 요즘 나의 엔돌핀이다. 항상 동생 가정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평안한 가정이 되길 바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늘 기도한다.

 

 

 

 <2009.03.01 교회 본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