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이것을 꽃구경이라고 해야하나?

순수산 2009. 4. 13. 09:57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이종사촌 모임이 목포에서 있었다. 거의 20여 년 동안 유지하고 있는 모임이다. 

광주에 사는 이종사촌 형님 내외분을 함께 모시고 아들을 대동하여 출발했다.

일이 바빠서 꽃이 피었어도 꽃구경을 한번도 못한 나로서는 모임 가는 목포행이 꽃놀이 가는것마냥 즐거웠다.

두분을 울황제가 형님, 형수님이라고 부르니 빠른 의견전달을 위해 편의상(?) 나도 형님, 형수님이라고 부른다. 

사촌모임의 연령대가 40대부터 70대까지 있는데 칠십을 바라보는 누님도 있다. 

아무튼 얘기를 나누다보면 얻어갈 것들이 많다. 인생 선배님들의 말씀은 영양가가 많이 들어있다.  

 

참말로 날씨가 좋다. 나주가는 길에 눈송이같은 배꽃이 우릴 반겨줬다. 찻길이라 사진을 못찍은 것이 아쉽다.

"형수... 꽃구경 아직 못갔죠. 자아~ 창밖을 보세요. 배꽃과 벚꽃이 있으니 꽃구경하세요."

울황제도 모처럼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좋은지 형수한테 농담을 한다. 

 

 <퍼온 배꽃 사진>

 

목포 가는 길목에 시어머니 산소에 들려 잔디를 정리하고 다시 약속장소로 향했다.

제일 멀리 사는 사람이 제일 일찍 도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모임이 6시인데 1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다.

음식점 앞에 주차를 해놓고 형님내외분은 음식점에서 가까운 또다른 형님 집에 가셨고 우리가족만 꽃구경하러 가가운 학교에 갔다.

 

 

 

 

아무리 길치라 하더라도 목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울황제가 여기에서 쪼그만 가면 상고가 나온다고 했다.

10여분 걸어가니 학교가 보이긴 했는데 정문 앞에 한눈에 쏘옥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으니...

 

 

아무튼 아들이 엄마 진짜로 김대중 대통령이 나온 학교야, 하며 신기하듯 되물었다.

이름하여 목포상고... 지금은 전남제일고등학교로 학교명이 바꿔졌다.

그래도 학교연혁을 보면...

 

본교 22회 졸업생 김대중 동문 제15대 대통령 취임

본교 22회 졸업생 김대중 동문 노벨 평화상 수상

 

우리가족은 1920년에 설립한 역사가 깊은 학교주변을 천천히 구경했다.

광주에서는 이미 다 저버렸던 벚꽃이 여기에서는 한창이였다.

정말 환하게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였다.

 

 

 

 우리는 잠시 모임 온것이 아니라 꽃구경 온줄로 착각했다.

이렇게 일찍 도착하니 꽃구경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조각이 있으면 꼭 똑같이 따라해보는 못말리는 울황제...

"아들, 이리 좀 와봐 이렇게 똑같이 앉아봐"

 

 

 울황제가 바라보는 쪽에는 뭐 좋은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붉은 동백나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주 오래된 학교라 건물은 낡은 것 같은데...

이 말을 들여다보고 한동안 나는 멈출수 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다.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이핑계 저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또한 하고 싶은 일들도 무척 많다.

그래서 행복하다.

 

3시간 동안 모임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주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쁨이고 행복한지...

겉은 그럴듯하게 화려한데 속은 상처투성이의 사람들도 많았다.

정말 그들이 주님을 만나면 삶의 많은 부분이 회복될텐데...

그들을 위해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예전에는 내 앞만 겨우 보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내 앞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까지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꽃구경도 좋았고 오늘 하루 참으로 뿌듯한 옹골진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