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와 악수하기
업무차 은행을 가는데...
며칠전부터 청소년 수련관 찻길 옆에서 배롱나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HI, SUNSUSAN~~~"
자기와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가라나 뭐라나...
"나 엄청 바뻐~~~"
통장을 20 여개 챙겨서 은행을 간다는것은 그만큼 은행에서 할일도 많다는 얘기.
은행일보고 한나님 뜨락에 가서 한나님 얼굴보고 얘기도 좀 나누고 하려면...
배롱나무와 눈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모르척 외면하며 그길을 여러날 씽~씽~ 달리기만 했다.
작년 9월엔가 사진속 배롱나무가 너무 멋있어 우리집에서 가까운 명옥헌을 다니려 갔었다.
그런데 꽃이 다 져버린 시기라 바닥에 떨어진 꽃들만 무심히 보고 왔던 씁쓸했던 기억이 났다.
꽃은 한때가 아닌가....한창 이쁠때 관심 갖고 봐줘야지....한가할 때 보겠다고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나는 여러번 경험한 바 있다.
그래. 오늘은 배롱나무와 반갑게 악수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또 은행길을 나섰다.
차를 한쪽에 주차시키고 디카를 들고 배롱나무를 요리저리 살폈다.
자세히 보니 장미하고는 차원이 다른 꽃이였다.
배롱나무는 꽃한송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꽃이다.
배롱나무는 그 주변에 군락을 이루어야 한층 멋이 있는 꽃이였다.
살짝 손으로 잡으면 꽃잎이 바스락 산산조각이 날만큼 연약하게 보였다.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 한참 이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은행가는 길목에 내가 만나는 배롱나무의 몇그루는 그 유명한 배롱나무 군락지에 비해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지고 볼 수 있기에 내게는 그 어느곳보다 이쁜 놈으로 다가온다.
남의 집에 있는 금송아지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는가.
내 집에 있는 구리반지가 훨신 소중하다는....뭐 그런 표현이 맞을라나...
지금도 이렇게 꽃잎이 떨어져 있다.
어느날 마음 먹고 꽃구경을 하려고 했을때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다 떨어진 꽃잎 때문에 땅을 쳐다볼지도 모른다.
뭐든 때가 있는 법...
그 때를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에 눈을 맞춰보자.
배롱나무와 인사하고 그냥 오려니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수련관 잔디구장을 한바퀴 휙 돌았다. 발걸음이 워낙 빨라 운동화 신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다 제쳤다. 구두 신고 말이다.
주변에 잎이 풍성한 가지만 보더라도 마음이 셀렌다. 뭔가 이 녀석들하고도 단 몇분이라도 대화를 나눠줘야 될 것 같은....
그만큼 내 삶에 여유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
나보다 훨씬 바쁘고 많은 일을 순식간에 다다다 퍼펙트하게 해내는 분들을 만나면서 절대로 내 입으로 바쁘다,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해놓고 나는 또 바쁘다고 엄살을 떤다.
"나 절대로 안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