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편한 옷 세 벌<샘터 2010년 2월호>

순수산 2010. 1. 18. 09:52

 

 

일주일 사이에 세 사람한테 옷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추운 겨울이 되고보니 따뜻한 이런 옷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혼자 생각한 옷들을 받게 되니 산타할아버지가 전해준 선물마냥 기분이 좋다. 이 옷을 준 사람들은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이다. 그러나 선물 받은 옷은 새 옷이라 아니라 본인이 입었던 옷이다. 


지난 주 시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시댁 목포에 내려갔는데 그날 시어머니의 스웨터가 눈에 들어왔다. 까만 니트에 녹색조끼를 입고 계셨는데 디자인이 참 멋졌다. 언발란스한 넥라인도 멋지지만 두 개라고 생각한 옷이 알고보니 니트와 조끼가 하나로 붙어있는 옷이였다. 원래 우리 어머니가 멋쟁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환갑이 넘은 어머니가 그날따라 더 젊고 멋지게 보였다.

“어머니, 어머니만이 소화해낼수 있는 멋진 옷이예요. 우리 어머니 오늘 너무 예쁘다.”

시아버지가 옆에서 웃으셨다. 사실 멋쟁이 어머니와 살고 있는 아버지는 자동으로 멋쟁이가 되신다. 칠순을 앞둔 아버지는 오십대처럼 젊고 깔끔하고 정정하시다. 잠시 후 어머니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벗어서 나한테 입으라고 주셨다.

“어머니.....저 안주셔도 돼요. 나는 우리 어머니가 너무 예뻐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 옷을 우리 큰며느리한테 주면서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엄마가 입은 옷이 이쁘다고 해줘서 고맙고 젊은 며느리가 입어준다면 엄마는 더 기쁘다. 그러니 잘 입어라.”

그러면서 다른 빨간 목티까지 주셨다. 너무 감사하여 새 옷으로 하나 사 입으시라고 몇만원을 드리니 우리 어머니가 극구 사양하신다. 명절때 시골에 내려가면 예쁜 옷을 사드려야겠다.

 

 

 

이틀 전 나를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블러그 지인이 골덴바지와 목티를 주셨다. 그러면서 새옷이 아니라서 주면서도 미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분의 숨결이 깃든 헌옷이 좋다. 새로 산 신발이 발에 불편하듯 이렇게 입었던 옷은 훨씬 편안한 느낌을 준다. 허리사이즈도 딱맞고 바지길이가 좀 길어 조금만 수선하면 몇 년은 잘 입을 것 같다. 지인은 항상 무엇을 더 줄까...이런 생각으로 사시는 분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나누며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제는 교회 권사님이 새벽이 많이 춥다며 새벽기도 갈 때 입으라고 털외투를 주셨다. 방금 세탁소에서 2개를 드라이 클리닝하여 찾은 옷인데 하나는 당신이 입고 하나는 내가 입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쌀쌀한 날씨에 짧은 스웨터만 입은 내가 추워보였는지 막내동생 생각하는 마음으로 주신 것 같다. 사실 털외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몸에 딱 맞는 옷을 주셨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새 옷도 좋지만 이렇게 입은 옷을 선물 받는 것이 나에겐 훨씬 기분 좋은 일이다. 옷 선물을 해준 세 분은 그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편안 사람으로 나를 생각한 것이다. 나는 불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를 딸처럼 사랑해주시는 시어머니께 감사하고 친동생처럼 뭐든 챙겨주는 블러그 지인께도 감사하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털외투를 준 권사님한테도 감사하다. 그들의 사랑이 깃든 옷을 입고 겨울을 지내면 추위쯤이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월간잡지 <샘터> 2010년 2월호 4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