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감사
“1년 동안 운동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킬레스건 파열로 봉합수술을 마친 정형외과 의사가 남편에게 선고하듯 얘기를 한다. 입원 2주, 깁스 3개월, 재활 1년이라는 말에 남편은 할 말을 잃어버린 듯 멍한 자세로 의사를 쳐다본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집과 회사와 교회밖에 모르는 남편이 일주일에 한번씩 셀가족과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탁구치는 즐거움으로 사는데 말이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한 남편은 스포츠 경기를 하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운동을 하면서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남편에게 1년 동안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니 얼마나 낙심이 되겠는가. 그것도 좋아하는 등산이나 탁구나 배구는 앞으로 안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남편은 깁스한 다리가 불편한 것보다는 1년 동안 운동을 하지 말라는 말에 더욱 충격이 큰 것 같다.
“나보고 할아버지가 되라는 말씀입니까.”
먹는 재미로 사는 사람에게 금식하라는 말과 다를바 없다.
<철쭉>
남편은 3개월 전 운동을 하다가 오른쪽 발목을 접질려서 반 깁스를 하고 침 맞으러 다녔는데...아직도 완치가 되지 않아 걷는데 불편한 상황에 또 운동하다가 왼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 수술하게 된 것이다. 누굴 탓하리요.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또 다쳤다고 얘기를 했을때는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당사자가 가장 놀라고 힘들었을텐데...전혀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요 잠시 불편한 것밖에 없으니 이 또한 감사하다. 이미 발생한 일로 왈가왈부 타박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벌어진 상황에서 최선책을 찾고 빠른 해결점을 찾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인데 말이다.
<이건 뭐지?>
몇 달전부터 남편 대학동창 부부동반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황금연휴때 가기로 했는데 보기좋게 취소가 되었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팀들도 안간다고 하니 민폐 중에 민폐이다. 친구가 없는데 무슨 재미냐며, 친구는 수술하고 병실에 있는데 우리만 놀면 되겠냐고 의리파 친구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수술하는 시간에 맞춰 가깝게 지내는 교회 집사님들한테 중보기도를 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감사하게 수술은 깔끔하게 잘되었다. 수술 다음날부터 교회 성도들이 병원에 오셨는데....참 많은 분이 찾아와서 기도해주시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셨다.
<부겐 베리아>
많이 부족한 우리 부부가 교회 셀리더로 세워진 후 매주 셀가족과 예배를 드린지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남편 셀가족들과 내 셀가족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온식구가 병문안을 왔다. 가족이기에 그들은 참 편안했다. 남편과 내가 교회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기에 성가대원들이 많이 오셨다. 그 중에서 굵직한 베이스 파트의 집사님은 영국신사처럼 멋졌다. 성가대원들 중에서도 남편과 더욱 친분이 있는 듯 보였다. 성도가 많은 우리교회에서 셀과 팀, 그리고 같이 훈련받는 제자들 외에 깊이 알기는 힘든데, 우연찮게 블러그를 통해 먼저 알게 된 모 집사님 부부가 주일밤 예배를 마치고 병원을 다녀가셨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 주변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다. 부족한 내게 스승같은 분들이다. 참으로 신실하시고 겸손하신 많은 집사님들을 통해 나는 늘 배우는 학생이 된다. 또한 모 여집사님은 회사일이 많고 근무처가 멀어 한달에 한번 있는 팀모임에 참석못한지가 오래 되었는데...팀장한테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000 집사님 일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가야 된다.”고 하셨다니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이건 뭐지?>
병실에 제일 먼저 찾아와 주신 모 권사님은 수시로 오셔서 말벗이 되어주셔서 남편에게 감동을 주셨다.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모든 분들이 내 일처럼 걱정해주고 기도해주고 위로해주시니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마음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흐뭇하고 좋았을 것이라 믿는다. 직장에 출근하므로 내가 곁에서 간호하지 못하기에 교회 권사님들이 수시로 병실을 찾아와서 엄마처럼 돌봐주신다. 참 감사하다. 사실 양가 부모님께는 걱정하신다고 아예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남편 칠남매, 우리쪽 형제들 죄다 연락했다면 매일 병실이 조용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일본 봉숭아>
남편은 무슨 자랑거리라고 다친 발을 찍느냐고 말했지만 이렇게 글로 기록하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 지금의 감사와 고마움이 희석되어 나중에는 내 마음에도 흐릿하게 남을 것 같아서다. 기록하지 않는 날은 죽는 날이다,라는 생각으로 늘 글로 남기는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는데 맘처럼 쉽지는 않다. 찾아와 주신모든 분들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그분들의 감사에 기도로 보답하리라.
<나리 나리~~~>
남편이 다치기 전에 입술 꼭다물고 있던 나리꽃이 남편이 입원한 다음날 거짓말처럼 활짝 폈다. 거실 에 있는 남편의 빈의자를 본 순간, 넓지 않는 거실이 무척 넓게 보이는 순간, 나리꽃을 보는 순간, 입원해 있는 남편이 몹시 보고 싶었다. 바쁜 삶으로 매일 4시간 밖에 못자는 정신력으로 버텨온 남편에게 하나님은 긴 휴식의 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2010.05.31
*** 사진은 남편이 키우는 <나는 잘 모르는>우리집 베란다에 있는 꽃들이다.
그동안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주인님이 없어서 이녀석들 무척이나 목말랐을거다.
그동안 물 안주었다고 엄청 야단 맞았다.
아직도 이름 모르는 녀석들이 있는데....
<간식먹고 있는 부자/병원 앞>
6월 2일 입원 14일만에 울황제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치료는 계속해야 하는데....일단 돌아온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목발짚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고(우리가 지지한 구의원이 당선되어 기쁘다) 집으로 온 것이다. 허벅지까지 깁스한 상태이니 또 당분간 무척이나 걷기에 활동하기에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적응이 빠른 사람이 아니던가. 잘 적응하고 잘 수용하리라 믿는다. 그동안 출근하기 전에 병원에 들리고 퇴근하고 병원에 들리고 아들 학원 데려다 주느라 나또한 육체적인 힘듦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주 홀가분한 상태이다.
오늘 아침 남편의 주도아래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아들, 앞으로 결혼하면 아내한테 잘해야 된다. 아빠도 해당되지만 아프면 아내가 다 하더라."
며칠 전 병실에 갔을때는 남편이 딸이 없는 것이 얼마나 서운하지 모른다고 했다. 부모님 아프면 아들보다 딸들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살갑게 연로하신 아빠한테 애교 부르며 잘하는지....아들 하나 있는 우리는 전혀 보지 못한 광경이였다.
담배 많이 피워 후두암에 걸려 고통스럽게 항암치료 받는 환자를 보면서....절대로 담배는 피우지 말아야 한다며 다시금 강조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번에 병원에 난생처음 입원하면서 느낀 것이 많은 것 같았다. 가장이 이제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더욱 극진히 모셔야 될 것 같다.
앞으로 우리가족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