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불빛으로 바늘귀에 실을 꿰다
견딜수 없어서 오늘은 아파트 바로 앞 근린공원으로 나갔다. 그동안 더운 날씨를 핑계삼아 운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더운 날씨에 운동을 격하게 하다가 더위를 먹어 이틀동안 혼났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운동을 잠시 쉰 것이다. 운동은 바람이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에 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운동을 쉬는 동안 먼지로 쌓여 있는 책들을 들춰서 몇 권 읽었던 것이 큰 수확이 되었다. 독후감을 써서 수상을 했으니 말이다.
운동을 했다면 그 책들은 여전히 먼지속에 켜켜이 쟁겨 있었으리라.
<일본 봉숭아>
10여 분 정도 집에서 걸어가면 잔디 근린공원이 나온다. 그러나 여긴 우리동네 이웃들의 사랑방이라 늘 부쩍거린다.
그래서 우리집 바로 앞 공원으로 갔다. 여긴 무척이나 조용한 공원이다. 운동장 트랙을 돌면서 기도도 하고 생각도 하고 오늘을 정리할 수 있는 명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비록 아파트 생활은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근린공원이 많다보니 우리집 앞마당처럼 잘 이용하고 있다.
한참동안 뛰기도 하고 걷기며 하며 트랙을 열다섯바퀴쯤 돌았다. 그리 넓지 않는 공원인데 가로등이 10여 개 정도 붉을 밝히고 있었다.
가로등이 참 많네....라며 생각하는데 그 불의 밝기가 영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가로등 아래에서 불의 밝기를 체크해보니
바늘귀에 실을 꿰어도 될만큼 밝았다. 여긴 도서관도 아니고 공원인데 굳이 이렇게 밝을 필요가 있을까...이건 낭비 아닌가...
은은한 불빛이면 훨씬 더 좋을법한테 왜 그렇게 이 밤을 밝게 비추는지 모르겠다. 잠깐 시야를 돌려 바로 옆 도로를 관찰했다.
가로등 불빛, 자동차 쌍라이트, 신호등, 상가 간판 등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며칠 전 밤에 운전을 하고 가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뭔가 시컴한 물체가 슬그머니 지나가는 것이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온통 도시 주변이 밝다보니 라이트를 켜지 않고도 운전이 가능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야간운전에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얼마나 큰 사고를 불러일으키는지 운전자들은 깨우쳐야 한다. 때로는 강렬한 불빛들이 도시를 시름시름 앓게 하는 공해가 된다.
근린공원 트랙이 좁게 느껴져 도로 옆 인도까지 넓게 돌았는데, 역시 근린공원을 돌때는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에 맴도는데 인도를 돌때는 매퀘하고 텁텁한 차량 배기가스가 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이렇게 코로 숨쉬며 운동을 하다보니 우리가 얼마나 대기오염 속에서 노출되어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몸이 아픈 사람들이 공해가 덜한 공기 좋은 시골에서 살면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가 이런 연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운동을 나가기 전 책을 보는데 슬슬 눈이 감겼다. 오늘도 회사 업무가 팔이 욱씬거릴만큼 컴퓨터 자판을 열심히 두들겨야 했다.
잠자리에 들고 싶은 유혹이 짧지만 강렬하게 왔다. 그러나 잠을 자버리면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정신은 더 고달프다.
'이 게으른 자야.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그래서 유혹을 물리치고 공원으로 운동하러 간 것이다. 운동을 하고 나니 정신은 훨씬 더 맑아졌고 생각 울타리의 빗장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하루를 기록하게 되었으니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