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화장실은 마음을 수리하는 정비소이다.

순수산 2010. 10. 8. 10:19

화장실은 마음을 수리하는 정비소이다.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일보다는 인간관계가 힘들어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을때가 훨씬 많다. 일이야 모르면 배워서 익히면 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숙달되어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천 갈래의 다양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20년이 넘은 직장생활에서도 늘 내게 숙제로 남는다. 몇 년 전 상사와 대판 싸우고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심했던 날이 있었다. 한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기에 하루종일 무거운 기류속에 몸과 마음이 힘들대로 힘들었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화장실로 피신했다. 화장실의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평안한 안도의 깊은 숨을 쉴 수 있었다.

 

 


기계나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살피고 손질하는 곳이 정비소라 하는데, 내가 도망갔던 화장실은 마음 정비소임에 틀림없다. 상사한테 내 의견이 맞았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며 그동안 힘들었다는 것을 호소했으며 나를 인정해달라고 핏대 세우며 변론할때는 잘 몰랐다. 화장실에 앉아 10여 분 생각해보니 나의 행동은 겸손이 장기 출장간 상태였다. 탁 틔인 공간이 아니라 좁은 공간이기에 화장실은 훨씬 적나라하게 나만 바라볼 수 있었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내가 많이 잘못했다. 상사가 나를 야단쳤을때는 일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됨됨이의 문제가 아니였나,싶다. 자기반성을 철저히 하고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서 상사를 바라보니 그리 밉지 않았다. 정말로 화장실 갈때와 나올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화장실 갈때만 해도 씩씩거리며 분노했는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화장실에서 다친 마음을 수리하고 나오니 상사를 이해할 수 있는 온화한 직장후배로 돌아온 것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 나에게도 직장후배가 생겼는데 후배를 바라보자니 그때 대판 싸웠던 상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사람은 위만 쳐다보면 불만이 생기고 불평하기 쉬워서 교만과 친해지는데 자주 아래를 쳐다보면 내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어 겸손하게 된다. 이것을 알면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 행복으로 변한다.

 

 

 

  


그때 상사와 크게 싸우고 화장실에서 새로운 다짐으로 재충전한 후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화장실에서 회복을 한 후 내 반성문같은 짧은 글을 작성하여 밋밋한 화장실 문짝에 붙여놓고 수시로 읽는다. 나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한테 짧은글은 묘한 힘을 주는 것 같다. 그렇게 큰 문제라 생각했던 것도 화장실만 다녀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말이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한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그래서 투덜보다는 감사한 하루를 서로 만들고 있다. 회사에 근무하면서 벽창호 같은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잔잔하게 빨아들이는 스펀지같은 조화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화장실 문짝에 붙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