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엄마간호일기 ⑪] "간호 못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요"

순수산 2011. 11. 25. 11:58

 

 

 

 

엄마가 입원하지 한달째가 되어가니 엄마나 나나 올케가 조금씩 지쳐간다.

날씨가 추워지니 서로 더 그런 것 같다. 올케의 4살된 아들이 많이 아픈데,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라고 했는데, 엄마의 병간호 때문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형님~ 제 여동생은 제가 학교 다닐때 000으로 죽고, 여동생 간호하면서 힘들었는지 저희 친정엄마는 00으로 돌아가셨을때

저는 두사람 병간호 한번도 안해봤어요~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 엄청 후회되는데....아빠가 모든 것을 다 했거든요. 아빠한테 참 죄송해요"

"그땐 네가 어렸잖아~ 그리고 사춘기로 너도 너를 통제하기 힘든 시기였고~"

"지나고 나니 그게 엄청 후회되더라구요. 그래서 엄마(시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그때 못한 죄의식을 풀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래~ 엄마(울엄마)를 간호하면서 네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풀어라. 나도 결혼하고 2년만에 00아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

정말 좋으셨는데, 정도 나누기 전에 돌아가셨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시어머니가 오셨어. 그 새시어머니가 낳아주신

어머니라 생각하고 그냥 잘해드리려고 해"

 

올케도 몸이 좋지 않고, 조카녀석도 아파서 병원 들렸다가느라 엄마병원에 많이 늦어 버렸다. 시간이 부족해 서로 충분한 소통을 하지 못해

오해가 생겨 이날 우리셋은 서운한 점이 생겼고~ 급기야 간병인을 신청하게 되었다. 어린 조카를 데리고 엄마 병간호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 많이 힘들어 보여 간병인을 사용하려고 문의를 해놓은 상태인데. 기회는 이때다 하고 바로 신청해버렸다.

다행히 엄마는 무료 간병인을 사용할 수 있었다.

 

택시 잡기도 힘들어 올케와 조카를 태워 엄마병원으로 데려다 주는데, 그 어린 나이에 올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못난 남동생과 살면서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내가 봤을때는 부족한 것도 눈에 보이는데, 제 딴에는 한다고 열심히 하니 그모습이 기특하다.

한달째 둘이 교대해가면서 엄마병간호를 하는데, 올케 고생하는 것 내가 제일 많이 안다. 내가 퇴근하고 저녁에 병원에서 잠을 자므로 나의 힘든 것을

또 올케가 제일 많이 안다. 우린 서로 겪어봤기에 그 누구보다도 강한 동지애가 생긴 것이다.

 

"00아~ 내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아니라 막내여동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거아. 네가 많이 힘들다는 것

잘 알고 있으니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하자."

"네~ 형님. 신혼초 00아빠랑 싸웠을때 형님이 우리집에 와서 화해시킬때, 저한테 남편이 아무리 미워도 시댁식구 보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힘내서 열심히 살아라. 그러셨잖아요. 친정에 맘 붙이지 못하고 살때 형님과 같은 좋은 분을 저에게 주신거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케어받을 곳

없는 나를 형님이 잡아주신 거예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마음 둘 곳 없이 힘들었을 올케를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짠해져온다. 그렇다고 막내동생이 살갑게 아내한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어딜가나 막내기질로 늘 챙기게끔 만드는 막내동생 흉을 둘이 봐가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엄마, 퇴원하면 너 데리고 가서 언니가 맛난 것 사줄께~ 끼니 제때 챙겨먹어야 나이 먹어 고생하지 않는다. 알았지."

"네~ 형님."

 

우린 서로 마주보고 얘기할 시간이 없기에 장문의 핸드폰 문자로 마음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면 이해못할 사람 하나도 없는데, 서로 소통의 문이 닫혀 있어서 조금만 서운하게 해도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한 이불 덮고 사는 오랜된 부부일지라도 서로 차분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알수 없다.

그러니 좀 더 여유를 갖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