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퍼온 사진]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다 안다.’에서 시작하므로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이 없는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더 큰 지혜가 쌓입니다.
깨달은 자는
전체의 흐름과 개별적 존재를 동시에 느끼는데, 무지한 자는
내가 만든 상(相)에 딱 맞아 좋거나, 맞지 않아 싫은 그런 몇몇의 개별적 존재들만 바라봅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
안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안방에서 거실로 나왔다는 것은 마음 먹고 집에서 책 좀 읽어보겠다는 아주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이다.
(사실, 나는 집 외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 집은 일단 할일이 많아서 큰 마음 먹어야 읽는다. ㅎㅎ)
고단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밤 11시가 되면 나는 누워서 tv를 조금 보다가 잠을 자는데,
그리 좋아하지 않는 tv를 보는 것도 내게 주는 하루의 선물이였다.
이틀 전, 남편이 꽃가게에서 치자꽃 화분과 천사의 나팔 화분을 샀다.
각자 특유의 향을 내뿜는 화분을 거실에 놓고 그 옆에서 선물받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스님의 책을 읽었다.
안방에서 거실로 나오길 참 잘했다.
어제의 이 시간에는 시끌벅적한 tv 프로에 공허한 웃음만 짓고 있었는데,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느끼게 하는 책을
하루동안 이리저리 치인 마음을 조용히 가라 앉히고 정갈한 평화를 주는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부터 행복이 올라왔다.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님의 책을 좋아하고
평소 읽고 싶었던 혜민스님의 책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종교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다 통합니다.
영성이 깊지 않은, 말만 배운 초보 신앙인들만 모양과 형식이 다인 줄 알고 세뇌되어
자기 식만 옳다고 싸우는 것입니다.(혜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