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2013. 8. 20. 09:59

 

 

 

경운기를 보내며/박노해

 

 


11월의 저문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개
막걸리와 고추 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나도 따라 절을 하고 막걸리를 마신다

23년을 고쳐 써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울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경물敬物 할 줄 모르는 자는
경천敬天도 경인敬人도 할 줄 모른다는 듯
물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남아 있을 리 없어

사람을 쓰고 버릴 때 어떻게 하더냐고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아픔도 없이
돈만 알고 경쟁력과 효율성만 외치는 자들은
이미 그 영혼이 폐기처분된 지 오래라는 듯

-[일간지]에서 발췌-

 

 

 


23년 동고동락한 경운기가 이제 다 되어 보내는데...

어찌 그냥 보낼수 있으리요.

영화 [워낭소리] 에서 보여준 것처럼

나와 함께 했던 것에 대한 감사와 고마움과 느낀다.

 

올초 20살 먹은 내 차를 폐차 시키면서...

누가 사준 장지갑이 세월이 흘려 겉상태가 너덜한 상태였는데,

차마 함께 해온 세월이 아쉬워 쓰레기통에 버리면서도 죄 짓는 것 같았다.

나는 구두쇠, 짠순이가 아니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한 삶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싶었다.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너무 넘쳐서 낭비하는 세상 속에

요즘 아이들은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손에 쥐게 되어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신과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오히려 문제가 크다.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지옥이다.

빵이 없는 사람의 불행은 빵 하나로 해결되지만

빵이 너무 많아 불행한 이의 불행은 대책이 없다.

-오늘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다-

 

절약해서 나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