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휴가] 4박5일 첫 휴가 나온 울아들, 만나니 반갑다.
아들 휴가 나온 것 축하~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어제 오전 아들을 태워서 광주역까지 데려다줬다. 적어도 아들 귀대하는 모습은 봐야 일손이 잡힐 것 같았다. 혼자 간다고 오지 말라고 했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안될 것 같아 바쁜 시간 쪼개서 간 것이다. 역에 도착해 용산역으로 향하는 KTX 기차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좀 그렇다. 4박5일 신병 위로 휴가를 받고 내려올때는 반갑고 좋았는데, 막상 다시 귀대하려는 모습을 보려니, 모든 것이 짠하다. 본인 심정이야 오죽 착찹했을까. 사회에서 며칠동안 친구들을 만나 힐링이 되었으리라 본다. 느슨했던 긴장감의 끈을 다시 조여야 할 판이다.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와 군복 입은 몸가짐으로 휴가기간 매일 부대 상관 5명한테 상황보고를 전화로 하더라.
경기도 파주에서 군복무하는 아들이 기차타고 전철타고 버스타고 광주 집으로 첫 휴가를 오기까지 멀고도 험했을 것이다. 워낙 멀기에 내려오면서 하루를 까먹고 올라가면서 하루를 까먹는 꼴이 된다. 그래도 아들은 내려오는 첫날부터 체계적으로 친구들을 많이도 만나더라. 연타 4일동안 새벽이 아닌 밤 12시 안에 들어왔으니, 나름 착한 아들이다. 그리고 기상도 새벽 6시 20분에 했으니, 훈련된 울아들 맞다. 아침 식사 후 다시 자더라도 엄마 아빠 출근하기에 이 시간에 일어나야 아침밥을 먹으며 서로 대화를 나눌수 있다.
주말에는 목포 조부모님 댁에 가서 휴가 나왔기에 인사드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과 맛난 점심을 먹었다. 햇빛에 그을린 귀한 장손 씩씩한 모습에 다들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고, 격려금도 두둑하게 많이 주셨다. 다들 네 부대는 괜찮냐? 구타는 없느냐? 아들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아들은 우리부대는 괜찮다,며 잘해준다고 얘기를 했다. 휴가나온 첫날 아들과 새벽 1시까지 식탁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건강하게 씩씩하게 군복무 잘 받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들 밑으로 후임도 몇 명 있는데, 아들이 살갑게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휴가 간다고 하니 생활관 심심해서 어쩌냐,며 분위기 메이커였던 아들에게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아들은 부대배치 되기 전에 장성에서 후방교육을 받고 장갑차조정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부대에서 전우들과 기갑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염둥이 아들로 보인다. 허나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어깨가 떡 벌어지고 종아리가 아빠보다 탄탄한 것을 보니 입대 5개월만에 진짜 군인아저씨가 다 되었다. 아들이 귀대하는 어제 새벽예배 시간에 찬송가 [기도하는 이 시간]를 부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다시 부대로 아들을 보내야 하는 것이 서운하고 서운했다. 그저 아들을 비롯하여 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적이 아니라 전우애로 똘똘 뭉치고 상생하는 관계가 되며 오직 나라를 위해 젊음을 불태우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같은 처지에서 서로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후방에서는 기도로 동참하리라.
만나기 전에는 그립더니, 만나고 나니 반갑고, 다시 귀대하니 서운한 이 마음은 전역할때까지 계속 되겠지~ 아들이 휴가 나온날, 남편이 31년 전에 군복무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지난 앨범을 들쳐보더라. 31년 전의 일이 엊그제 일처럼 얘기하는 남편의 얘기가 귀에 속속 들어온다. 내 아들이 군복무 기간이라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남편이 군복무 얘기하면 한귀로 듣고 흘러보냈는데, 그날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친구 만나고 늦게 귀가한 아들에게 아빠의 군앨범을 주며 꼭 보라고 했더니, 꼼꼼하게 쳐다보더라. 31년 전의 군부대 모든 상황들은 열약했지만 분명 전우들의 정신력만큼은 강했으리라 본다. 모쪼록 아들이 사나이 중에 진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아들 데리고 목포 내려가는 길, 가을하늘은 이렇게 예뻤다.
귀대하는 아들, 광주역에서
첫 휴가 기간
(8/7~ 8/11 4박5일)
31년 전 남편의 군복무때 1사단 부대마크
철모 쓴 사람이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