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억불산] 누워서 하늘을 자주 보자
벚꽃축제가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고의 모습을 보고자 불편함도 무릅쓰고 절정의 순간을 보러 다닌다. 그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다. 만개한 꽃도 좋지만 우리부부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사람구경만 하고 오는 것을 전적으로 싫어하기에 웬만해서는 축제를 피해 다닌다. 그래서 축제의 꽃구경이 아닌 지인과 장흥 억불산을 다녀왔다.
억불산의 정상이 518m로 그렇게 힘들지 않는 산이다. 또한 이 산은 정상까지 데크가 조성되어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오를수 있도록 배려한 산이다. 산행을 힘들어하는 동행을 배려해서 억불산을 선택한 것이다. 억불산은 언제 가도 아늑하고 포근한 산이다.
이틀 동안 봄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주말에는 날씨가 화창하다. 산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살았는데 다행이 날씨가 도와줬다. 오렌지와 사과와 커피를 챙겨서 뒷좌석에 두분을 모시고 장흥으로 달렸다. 우리부부만 주로 산행을 다녔는데 이렇게 부부 한쌍과 함께하니 이야기가 다양하고 화기애애해서 좋다.
억불산 주차장에 차가 몇 대 없다. 등산객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일상이 바빠 허우적대며 살았는데 이렇듯 자연을 벗삼아 좋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좋다. 산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동행한 사람과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연분홍 진달래가 예뻐서 사진을 찍으며 일행을 뒤따라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뱀이 낙엽 사이로 스르르 지나간다. 비가 온 뒤라 마실을 나왔을까. 길이가 얼추 30센치미터는 되어 보인다. 뱀과 나의 거리가 50센치미터도 되지 않는데 두렵지 않는 이유는 산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들린 이방인이니 오히려 내가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쉼터에서 오이도 먹고 물도 마시며 쉬고 있는데, 십여명의 초등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른 오전에 산에 온 것만으로도 기특한 아이들인데 깍듯하게 인사까지 하니 더 예쁘다. 조용한 산속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올라왔는데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이야기 소리도 새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린다. 이 아이들을 인솔해서 온 선생님이 참 멋져 보였다.
정상에 올라 멋진 프레임을 잡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작년 가을에 이 바위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멋지게 나온 기억이 있어서다. 두분을 위해 멋진 사진을 남겨 드리고 싶어서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글보다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꽤나 오래간다. 약간 부끄러워하는 동행들을 위해 셀카도 찍게끔 도와드렸다. 야외식탁보처럼 판초의를 깔아놓고 그 위에 김밥과 과일을 내려놓고 점심을 잘 먹었다. 햇살을 받으며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좋다.
급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산행이었다. 다들 바삐 사는 직장인이라 여유와 느림이 주는 이런 평온함이 한없이 감사하다. 하산길에 편백 숲을 지나 오는데 편백나무 침대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봤다. 살면서 하늘을 쳐다보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쭉쭉 뻗은 편백나무 끝에 매달린 잎들이 하늘하늘거리며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부르스를 추고 있다. 한가롭게 누워서 나무끝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저들처럼 흔들흔들 춤을 춘다. 옆 침대을 돌아보니 동행은 새근새근 꿀잠을 자고 있다. 그 십여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장흥에 오면 꼭 들리는 곳이 토요시장이다. 토요시장 무대에서는 여전히 노랫가락과 춤이 넘실거리고 있다. 우리는 싸고 푸짐하게 파는 시장을 구경하면서 건고구마순과 파프리카도 사고 오이고추도 샀는데 덤으로 주는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속에 시골의 정을 느낄수 있었다.
4월, 봄꽃이 개념없이 화르르 너도나도 피더니 한눈 판 사이에 꽃이 지고 있다. ‘날 좀 보소’ 봄꽃이 손짓을 하는데, 볼 것도 많은 봄이건만 이 몸은 해야 할 일들 속에 꽃에게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짬을 내서 이렇게 산행을 다녀오면 뭔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 산행 중에 진달래와 제비꽃 그리고 벚꽃을 봤다. 그들의 손짓에 내 눈길을 더했다.
[그는 산에 있을때 참 멋지다]
[남편은 브라질의 예수상 포즈, 나는 섹시포즈]
[부부는 닮았다. 서로 하트 뿅뿅]
[2016년 10월에]
[새근새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