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 북한산, 새벽 산행의 추위를 따뜻한 마차로 달래다.
강북, 서울의 끝자락에 있는 북한산(836m)을 다녀왔다. 산 근처 24시간 찜질방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소리에 민감한 나는 찜질방에서 자면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새벽 2시쯤에 큰소리로 얘기하는 청년들에게 “제발 좀 조용히 얘기하세요.”라고 주의를 줘야만 했다.
이날 오후 2시에 강남에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예식장에 참석해야 했기에 적어도 오전에 산행을 마치고 1시까지는 샤워도 끝내야 했다. 서둘러서 백운대탐방지원센터로 새벽 6시에 도착했다. 세운 계획을 달성하고자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부부의 의지가 참으로 대단하다.
어제 속리산을 다녀온지라 다리가 좀 아팠다. 악산이라는 북한산을 등산할 수 있을지 걱정도 사실 되었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하기에 든든했다. 미세먼지가 극심하다는 뉴스를 듣고 마스크를 쓰려고 립스틱도 바르지 않았는데, 결국 마스크는 찾지 못했다.
새벽의 산은 몹시 추웠다. 5월인데 초겨울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등산복장으로는 추위를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차에 있는 무릎담요를 꽁꽁 싸매고 올라갔다. 그런데 가슴 저 밑바닥부터 추위가 느껴졌다. 남편은 몸이 힘들면 그냥 올라가지 말자고 얘기했다. 마침 탐방센터 입구에 자판기가 있어서 따뜻한 율무차와 마차 두잔을 언거푸 마셨더니 속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어떤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마차 네잔을 뽑아서 보온병에 담아서 챙긴 후 본격적으로 산에 올랐다.
아침 7시도 되지 않았는데, 부지런한 등산객들은 이미 하산을 하고 있다. 북한산을 얼마나 오르내렸던지 돌계단이 반들반들 닳아있다. 잘못 디디면 미끄러질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비나 눈이 오면 정말로 조심해야 할 산이다.
깊은 산속에 있으면 마음이 평온하다. 초행길의 이 산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평소에도 에너지가 넘치는 것은 산에서 얻은 대자연의 힘 때문일 것이다. 한달에 한번 이상은 산행을 하려고 노력한다. 산행을 하다보니 건강에 좋다. 더불어 마음도 개운해지고 맑아진다.
어느 정도 오르막을 올라서니 저 멀리 텔레비전에서 봤던 인수봉이 보인다. 인수봉과 백운대는 암벽등반가들한테 인기 있는 곳이다. 손과 발을 사용해 암벽을 타는 그들은 우리처럼 걷는 산행보다 훨씬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산행일 것이다.
병처럼 생겨서 이름 지어진 분홍 병꽃이 눈에 들어온다. 주렁주렁 땅을 향해 촘촘히 꽃을 매달고 있는 때죽나무꽃도 이 아침에 싱그럽게 다가온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인내했을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이 없었을텐데 그런 마음으로 보니 꽃 하나하나가 대견하다.
북한산은 암벽등반가가 아닌데도 손으로 잡고 두발을 크게 벌려서 올라가야 등산할 수 있는 산이다. 걷는 산행이 아니라 바위를 올라타는 등산이다. 백운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무릎이 많이 아프다. 험하고 가파른 산길로 산악 사고로부터 등산객을 지켜주기 위해 산속에 북한산 경찰 산악구조대가 있다. 산행 중에 밧줄을 어깨에 매단 구조대원들과 암벽을 타려는 등반가들과 덥수룩한 수염이 눈에 먼저 들어온 산지킴이까지 만날 수 있었다.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서 드디어 북한산의 정상 백운대에 올라섰다.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정상에 꽂아있는 태극기 끝이 바람에 찢겨서 너덜너덜하다. 안전지대가 턱없이 부족하다. 발을 잘못 디디면 저 아래로 굴러떨어질 듯 위험천만하다. 웅장한 산세에 셀카를 찍어댔다. 미세먼지로 서울 시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날씨가 맑다는 것이다. 잠깐 앉아서 소시지로 허기를 채웠다. 그러고보니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정상에서 마음껏 누리다가 하산했다. 내려가려니 무리지어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새벽 산행을 했기에 그나마 우리는 한적한 산행이 되었다. 등산을 시작할 때는 추워서 담요까지 싸맸는데 산에 오르다보니 땀을 많이 흘렀다. 왕복 4시간의 산행이었다. 오전 10시에 탐장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연이틀 동안 쉽지 않는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남편과 나는 두손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남편은 마누라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산 후 우리는 예식장 근처에 미리 봐두었던 황금온천으로 갔다. 유황온천인지 미끌미끌한 온천수로 샤워를 말끔하게 하고 정장을 차려 입고 나왔다. 남편 절친의 딸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번에 두 개의 국립공원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 있는 결혼식이 시발점이 되었다. 아마 신랑신부는 잘 살 것 같다. 중독인가. 벌써부터 다음 산행이 떠나고 싶다.
[추워서 무릎담요로 싸매다]
[분홍 병꽃]
[암벽등반 수준]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