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2012. 7. 31. 16:57

                                                                [퍼온 사진]

 

  

 

3월에 내리는 눈발은 달갑지 않다. 마음속 봄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데 겨울보다 더 추운 날씨에 배반을 당한 느낌이다. 봄옷 준비는 당분간 보류해야겠다 퇴근후 아이를 시내버스에 태우고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긴장하는 눈빛이며 내마음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앉을 자리가 있어도 혹 잠을 자다 내릴 곳을 지나칠까봐 절대 앉지 말기를 당부하며 아이는 집으로 나는 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주일에 두번씩 사회교육원 강의가 있는 날이면 퇴근후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갔었다.그로인해 강의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마라톤을 해야했다. 매번 이런 버거움에 힘이 들때면 10살이 되었으니 혼자 집에 보내도 된다고 다짐하지만 내마음이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채 여러날이 지나버린 것이다.


내가 아이만한 나이에 엄마와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가 엄마 손을 놓쳐 길을 잃어버렸다. 엄동설한 세상에 혼자 버려진 아찔했던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글을 깨우쳤으니 물어물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되었겠지만 혼자 타는 버스는 나를 이상한데 내려줄 것 같았고 처음이라는 낯설음은 어린아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당시 내 손을 꽉잡지 못한 엄마가 미워서 엄마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울며불며  어렵게 집에 도착한 후 장롱속에 숨는다는 것이 그 속에서 잠이 들고 만 것이다. 엄마는 나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녔을 것이고 어두운 저녁이 되어 얼굴이 반쪽이 되어 집에 오셨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한참 자다가 엄마의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방바닥으로 떨어졌던 기억이 어젯일처럼 선명하다.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을 잘 잠근 후 엄마 핸드폰을 해주라’며 신신당부를 했건만 40여분이 흘러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잘 도착하여 아무일 없겠지, 생각하려해도 생각은 생각을 물고 이상한 결론을 내리며 내머리를 온통 뒤흔든다. 아이를 믿어보자 나의 조급한 마음을 잠시 거둬보자 스스로 위로를 하려해도 강의시간에는 핸드폰을 꺼두어야 하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불안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의 벨소리가 들린 후 아이가 숨차게 전화를 받는다.

-왜 전화 안 했니?

-엄마 이제 막 도착했어요.

-그래 잘했다 장하다.

-엄마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별것도 아닌것에 괜히 신경쓴다는 말투로 아이는

-엄마, 또 언제 학교 가세요. 맨날 저혼자 버스타고 집에 올께요.


아이는 이 한번의 경험을 통해 성큼 자랐을 것이다. 잠시나마 엄마의 잔소리에 해방감도 맛보았을 것이다. 먹음직스러우나 길에서 파는 닭튀김은 비위생적일 것 같아 사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는 닭튀김을 먹으며 즐겁게 집에 갔을 것이다. 혼자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과 엄마의 번거러움을 덜어주었다는 효심이 꿈틀거렸을 것이다. 저도 잘할 수 있는데 엄마는 괜한 걱정을 한다며 엄마에게 문제점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저를 너무 아기처럼 대한다는 말이 오늘 일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아이의 소재(所在)를 파악하고 나니 안심이 되어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집에 가면 아이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주며 힘껏 안아주어야겠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지척에 학교를 두고도 멀리 다녀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방과 후 편히 쉴곳도 없이 사무실에 잠시 있다가 학원에 가는 아이를 볼 때면 안쓰럽다. 형제 없어 외롭게 지내는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씩씩하고 예의바르게 잘 자라주며 승부욕이 강해 한번 시작한 일에는 적극적이며 의욕이 넘친다. 나의 걱정과 불안으로 순간의 안위(安慰)를 위해 자꾸만 커나가는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해버린 듯 싶어 뉘우침이 크다.


나또한 이 일로 인해 아이처럼 큰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명분아래 아이를 세상속에서 키우려 하지 않았던 내 무지(無知)가 아이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든지도 모른다. 결코 부딪치지 않고는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던 소중한 하루다. 순간 내속의 두꺼운 더께를 수세미로 박박 문지른 듯 개운하다. 상상속의 일은 마냥 어렵기에 해결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처음을 거치는 것이다. 처음이 두렵지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시나브로 몸에 익숙할 것이다. 경험이 없기에 무지상태에서 도전하는 것이 힘들뿐이지 막상 하고 나면 허탈한 기분이 들수도 있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소극적인 생각에 걱정이 앞서 세상에 대한 도전을 막아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실패를 통해 더욱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던가.


딱딱한 알에서 깨어 나와야만 세상의 드넓은 창공을 날 수 있다. 무지(無知)를 깨우치고 여러번의 실수속에 경험을 쌓아야 세상에 용감하게 뛰어들 수가 있다. 그로인해 슬기로운 지혜와 심미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입술이 교과서요, 어머니의 무릎이 교실이다’라는 자녀교육의 철학속에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고자 배움에 대한 끝없는 목마름으로 오늘도 학교 가는 발걸음이 바쁘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방학을 하여 여동생의 아들 8살, 6살 두녀석들만 지금 집에 있으며, 제부와 여동생은 출근을 했다.

이 상황을 알고 계신 친정엄마는 어떻게 위험하게 아이들만 놔두고 출근하냐,며 걱정을 태산같이 하신다.

이 소식을 들은 나또한 내 일처럼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직장맘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동생한테 큰 위로와 격려는 못해줄망정

나또한 예전에 이런 일로 맘고생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데, 서로 바쁘니 만나서 얘기할 시간도 없고, 그래서...

 

예전에 이 일로 고심할때 써놓은 글이 있어서 동생한테 메일로 보내줬다. 읽고 힘내라고...

울아들 초등학교 2학년때 나는 평생교육원 다닌다고 퇴근후 늦지않도록 대학교로 강의 들으러 가야 했고,

이글은 학교와 학원을 갔다온 아들이 처음으로 버스타고 혼자 집에 가는 날의 풍경이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집 근처의 학교를 못 다니고(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엄마의 직장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 아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 고생이 컸겠다.

십년전에 쓴 2002년의 글인데,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아들에게 이 글을 지금 보여주면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낼까....

 

알에서 스스로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되어 걸어다니는 것이고

알에서 스스로 깨지 못하고 남의 손에 의해 깨지면 후라이 밖에 되지 못한다.

조카 두녀석들에게도 또한 "그냥 아이들만 놔둬도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여동생도 이런 과정을 통해

쑥쑥 성장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