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크로바 타자기

순수산 2009. 3. 24. 17:06

 

 

 ♤어제 법무사에 볼일이 있었다. 서류를 담당직원에 부탁하고 차 한잔 하면서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데...

"탁탁탁 탁탁탁...."

웬 향수(?)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도 맑고 경쾌한 타자기 치는 소리였다.

신문을 덮고 일어서서 다른 직원이 타자치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지금도 타자기 사용하나요?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던지 직원은 그만 일을 멈춰버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죄송한데 너무 보기 좋아서 그러니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

"쑥스러운데요"

직원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할일도 있으니 하는투로 다시 일거리를 들고 타자기쪽으로 가서 탁탁탁 탁탁탁 작업을 시작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아직도 법무쪽에는 이렇게 타자기를 써야 하는 일들이 있나보다.

타자기에 대해 담당직원에게 더 물어봤다.

-타자기 소모품은 어떻게 조달하나요? 지금도 이런 소모품 관리하는 곳이 있나요?

"여기는 없구요 주로 서울에서 조달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수요가 별로 없어서 소모품비도 비쌉니다.

-아마 지금 타자기는 컴퓨터보다 더 비쌀거예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듯 나는 몇분동안 직원을 더 쳐다보았다.

양철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제일 좋아했던 어떤 교수님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옛날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20 여 년전에 첫직장 대학교에서 근무할때 사무실에 비치된 지금의 크로바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곤 했다.

주로 손으로 직접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던 그 시절 타자기는 아주 편리한 기계였다. 타자기가 없는 사무실도 있었으니...

학교에서 배운대로 열심히 치려고 했으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손도 떨리고 오타 투성인 문서를 바라보면서 애를 탔던 그 시절...

 

지금은 컴퓨터 범람시대에 살면서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가방 놓고 컴퓨터 전원을 눌러 퇴근할 때까지 컴퓨터를 사용한다. 

컴퓨터 작성은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인정머리가 없고 구성지지 못하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컴퓨터에 자리를 내주고 손글씨를 써보지 않으니 모처럼 글씨를 쓰려면 악필중에 악필이 탄생한다. 

하얀 종이 위에서 펜을 잡고 글씨를 쓰다보면 불완전한 엉거주춤 춤을 추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명필이였는데...

 

타자소리의 탁탁탁 소리가 깊은 숲속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물처럼 들렸다.

타자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직원을 계속 쳐다보며 첫직장 향수에 오래도록 젖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서류, 다 됐습니다. 처리한 후 일주일 후에 회사로 발송해드리겠습니다."

-녜. 감사합니다.

 

타자기로 인한 좋은 글감 한 건 올린것 같아  사무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룰룰랄라~~~~ 

 

 요즘 아주 비싼 몸인

      크로바 타자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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