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기계 전세 냈쇼!

순수산 2010. 8. 18. 10:55

 

 

회사 업무차 주거래  00은행을 자주 간다.  주로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만 은행에 직접 가서 해야 할 일이 없지는 않다. 업무가 많다보니 한달에 여러번 은행을 간다. 자주 은행을 찾다보니 행원들과 도타운 친분관계도 생긴다. 뭐 그렇다고 내 적금금리를 1%라도 올려주지는 않지만. (ㅋㅋ)


오늘은 월요일이고 세금 내는 날이라 은행이 북적거렸다. 보통 정리할 통장을 20여 개 갖고 가는데...... 번호표를 뽑고 나니 10여 명 기다려야 될 것 같다.

(VIP 고객이라 번호표 없이 곧바로 일처리 해도 되는데.....내 업무가 급하지 않으면 번호표 뽑고 의자에 앉아 띵동~ 내 번호를 부를 때까지 사람구경을 한다.)


오늘의 사람구경 중 압권이 있었다.

까만 그물망사 스타킹에 허벅지가 보일랑말랑 아슬아슬한 아주 짧은 스커트를 입었으며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묶었다. 상의는 꽉 쪼인 쫄티였다. 뒷모습만 봤을때는 영락없이 20대다. 허걱~ 그러나 일을 보고 돌아 나오는 모습 보고 그만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50대는 족히 넘을 나이였다. 어찌나 보기에 안타깝던지......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혼자 쿨~~하게 사시는 분 같았다.


 

<ATM 기계 / 퍼 온 사진>

 

은행원과 일처리를 해야 될 것만 남겨 놓고 통장정리를 하고자

ATM<현금 인출 카드나 예금 통장을 사용하여 현금의 인출, 예입, 기장(記帳), 잔고 조회 따위를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장치> 기계 앞으로 가서 통장 20여 개중 절반정도 ‘드르륵 드르륵’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뜸 내 등 뒤에서~


"기계 전세 냈쇼!"

뜨아~~~

아주 투명한 어조로 아니 한판 붙자,는 전투적인 말투가 던져졌다.

고개를 획~ 돌려 뒤돌아보니, 아주 험상궂은(몇 가닥의 머리칼만 불쌍하게 남아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할아버지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일을 끝내야 물러설 것 아닙니까......"

순간 나도 대들듯 쏘아 붙쳤다.

진득하니 못 기다리다가 말싸움이 번져 칼부림 났다는 신문기사가 1초 동안 내 뇌리를 싸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등 줄기가 무섭게 시원했다. 그러나 착하게 생기지 않는 내 얼굴을 본 후 또한 곱지 않는 내 답변으로 포기하셨는지 빈자리가 생기자 옆기계쪽으로 가셨다.

(저런 성질이니 머리칼이 도망가지 붙어 있겠어~)


똑같은 상황이지만 

'실례하지만 일처리 끝내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죠?'  라고 말씀을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어르신~ 1분만 더 기다려 주시면 다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답변해 드렸을 것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법,

고작 1,2분도 기다리지 못하는 중증 조급증 환자들 때문에 세상이 참 격하고 험난하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한테는 반말과 함께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나이 드신 사람들...... 다짜고짜 말을 툭 뱉어버린 그분을 보니 장유유서가 유명무실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이렇게 매사 여유없는 모습을 보면 짠한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다면 나이를 막론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라. 그러면 점잖은 어르신이라고 대우 받는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 6장 31절)”

진리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