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조카,나의 엔돌핀

이모, 정상은 언제 나와요?

순수산 2012. 4. 10. 18:05

 

제 눈에도 개나리가 어여쁜지 한참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다.

 

 

"이모, 산에는 언제 가요?"

매주 교회에서 만나는 조카가 나만 보면 산에 언제 가냐고 물어봤다.

이 녀석들과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으나, 고3 아들 챙기느라 요즘 내 시간이 도통 나질 않았다.

또한 우리회사가 몇십억이 되는 아주 복잡한 큰 공사를 하게 되면서 회사에서는 왠종일 컴퓨터로 일하느라 눈이 아프다.

내 사전에 퇴근시간 6시를 넘긴 적이 없는데(다른 직원은 다 남아 있어도 나는 6시 땡하면 퇴근했는데...)

그런데, 요며칠 나는 아주 오랜만에 퇴근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일을 했다.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 좋을련만, 정신없을 정도로 겹치기로 찾아오면 정리가 안돼서 헉헉댄다.

회사일로 몸은 자동적으로 피곤한데, 그렇다고 주부로서 엄마로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을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울황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래~ 여기저기 꽃망울 터뜨리는 주말 오후 나는 갑자기 동생한테 전화해서 두녀석들과 산에 간다고 통보했다.

순수한 조카들 데리고 뒷산이라도 다녀오면 그나마 정신적이 피로가 싹 도망갈 것 같았다.

또한 이 바쁜 와중에도 리뷰어로 당첨되어 [기적의 유치원]의 리뷰를 작성해야 했기에

나는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두 조카들을 잠깐 실험해보고 싶었다.

 

"애들아~ 오늘의 목표는 그네까지가 아니라 한새봉 정상까지 가는거야. 너희들 할 수 있지."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나는 두녀석을 앞장 세워 산행을 시작했다.

 

 

 

6살 민채군

그래 아직까지는 멀쩡하다.

 

 

 

8살 민기군

지금은 웃을 수 있지.

 

 

 

산에 오르니 역시나 봄꽃이 우릴 반긴다.

많이 피지는 않았지만 진달래가 참 곱게 폈다.

 

 

 

노랑꽃 삼총사도 우릴 반기고..

 

작년에 가고 올해는 처음이라 이 녀석들 산행 초입부터

힘들다고 어린광을 피운다.

"우리 교회가 한눈에 보이는 그 벤치에 가면 맛난 간식 먹을테니 우리 조금만 힘내자."

 

내 배낭에 약발이 잘 드는 간식을 담아왔으니 산행하면서 종종 써먹을 것이다.

 

 

드디어 1차 쉼터에서 사과 토마토를 먹고 쥐포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 돌렸다.

바람이 참 상쾌하게 다가왔다.

올해 초딩1학년이 되면서 안전상 제 엄마가 사준 어린이용 스마트폰을 목에 걸고 온 민기군

웬지 내게는 그것이 짐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직장에 출근해야 하니 학교 끝나면 혼자 걸어오기에 분명 필요한 물건일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이런 기기에 길들여지는 것이 안타깝다.

여하튼 나는 시간을 내서 이 녀석들에게 자연과 함께 놀 수 있는 환경을 자주 마련해주고 싶다.

 

 

 

똘망똘망한 저 눈동자~

"애들아 이 대나무 터널 너무 멋지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네. 자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자."

"이모, 산 정상은 언제쯤 나오는 거예요?"

드디어 울 민채군이 다리가 아픈가보다.

"이모, 나랑 같이 가요~"

"이모, 내가 앞에 갈 거예요."

"이모, 심(힘)들어도 끝가지 가야 돼죠~"

정확하지 않는 발음으로 정상은 언제쯤 나오냐,며 20번은 물어본다.

다리가 아프다. 나랑 같이 가자. 내가 앞장 서서 갈테니 이모는 내 뒤에서 와라, 주문이 참 많다.

ㅎㅎㅎ

 

 

 

 

항상 갔던 산 중간쯤의 그네쪽이 아니라 정상쪽으로 가기 위해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이들도 이 쪽길은 처음이라 생소한지 잘도 뛰어간다.

"애들아~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대보자."

"나무가 뭐라고 하던?"

"이모, 아무 말도 안하던데요~"

"......"

 

너희들 보게 돼서 나무가 반갑다고 하지 않던.

나는 매일 서서 자니까 다리가 아프다고 하지 않던.

너희들은 추우면 이불 덮고 자니까 부럽다고 하지 않던.

나는 어쩔수 없이 이런 얘기들을 아이들한테 해줬다.

 

 

"애들아~ 이쪽 길이 참 예쁘지. 와아 저기 강아지 온다. 구경하자."

"이모~ 저 이 길을 아빠랑 온 것 같아요."

"진짜? 언제 와봤는데..."

"꿈속에서요"

ㅋㅋㅋ

 

 

 

"야~ 계단이다."

이 녀석들은 처음 맞이하게 된 계단도 신기하나보다.

좀 가파픈 길을 갈때 미끄러지면

"이모, 이쪽에 계단이 있으면 미끄러지지 않고 오를 수 있는텐데요..."

똑똑한 녀석들.

 

 

 

 

계단이 없는 경사로에는 이렇게 줄을 잡고 올랐다.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다.

"이모, 정상은 언제쯤 나와요~ 저 심들어요."

"귀를 기울여봐. 정상이 멀지 않았다. 저 아래 패밀리랜드에서 음악이 들리지 않니?"

6살 민채군은 총 4번을 넘어지고 영광의 상처까지 얻은 후

8살 민기군은 총 2번을 넘어졌으나 모두 울지 않고 일어났다.

장한 조카들...

 

 

 

 

드디어 정상이다.

저 아래 패밀리랜드가 한눈에 다 보인다.

 

 

 

 

우린 해냈다.

그저 아이들이니까 정상까지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것

[기적의 유치원]을 읽으면서 나는 그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우린 그것을 잘 끄집어 내주면 된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천천히 기다려주면서 이끌어주면 아이들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이모~ 이제 우리 앞으로 더 높은 산에 가게요~"

아이들은 쉽게 지치지도 않고 또한 회복력도 빠르기에 한계를 짓지 말고

도전하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산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구 뛰어간다.

정상에서 음료수와 쥐포를 먹고 정상에서 부는 바람도 맞으며 우리는 한참 쉬었다.

 

이제 하산이다.

내려가는 것이 오르는 것보도 훨씬 어렵다는 것

애들아, 알겠지.

 

 

 

하산길의 진달래

 

 

민기군은 산행중에 막내고모한테 전화와서 통화하고

(참 똑똑하고 예의 바르게도 통화한다)

엄마한테 민채가 넘어져서 좀 다쳤다고 보고하고

(이런 것은 보고 안해도 되는데....피가 안 나오면 다친것도 아닌데...ㅎㅎ)

제 폰으로 사진 찍어서 엄마 아빠 보여준다고 찍고

밧데리 닳아진다고 꺼놓고...또 사진 찍은다고 켜고...

아주 폰 때문에 바쁘다 바뻐~

 

 

 

딱 이 시기를 놓치면 보기 힘든 진달래~

 

 

 

 

저 아래 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열심히 운전 시험중이다.

이제 산은 다 내려왔고 집까지는 인도로 한참 걸어가야한다.

 

 

 

그럼 그렇지. 나무 열매가 모아져 있으니 막대기로 흩어지게 하는 민채군

해찰은 기본이다.

 

 

 

아이구 오늘 산행 정말 힘들다. 좀 쉬자.

 

 

 

모처럼 개나리도 가깝게 구경했고~

 

 

 

담벼락의 개나리는 훨씬 멋지다.

 

 

 

 

그래~오늘 이렇게 멋진 개나리 본 것만으로도 알찬 하루였다.

어쩌다 한번씩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피로회복이다.

비록 몸은 좀 지치더라도 정신은 맑아진다.

 

아이들에게는 벅찬 산행이였는지 모르지만 심(힘)들어도 끝까지 가야된다는 민채군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다보면 내가 목표한 곳에 도달한다는 것

그것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난은 고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열매로 영글어서 내가 맛볼 수 있다는 것,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믿어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발전한다."

-리더쉽 전문가 존 맥스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