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처럼 키도 크고 옷도 잘 입고 다니는 멋쟁이 지인이 며칠 전 옷이 작아 못 입는다고 새 옷과 진배없은 더블 티를 줬다. 나이 사십이 넘어도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에 티 하나 입는 내 스타일을 알기에 아주 무난한 옷을 준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 옷은 내가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아주 여성스런 상의였다. 지인이 나를 생각해서 준 것이니 한번 입어보리라 마음먹고 입었는데...... 그 상의와 받쳐입을 마땅한 바지가 없었다. 그래서 큰 마음 먹고 검정바지를 하나 샀다. 그런데 늘 운동화만 신고 다녔기에 그 멋진 옷과 함께 맞출 구두가 없어서 또 큰 마음 먹고 구두를 사게 되었다. 지름신이 강림한 것일까. 바지와 구두를 사놓고도 웬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20여 년 전 사회생활 초년생 일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다. 한창 멋부리기 좋아할 나이에 친구들은 월급 타면 제일 먼저 옷을 사 입었는데 나는 옷 쇼핑이 재미없었다. 월급 받으면 옷 대신 꼬박꼬박 책을 사서 읽었다. 그때 무소유를 읽고 아주 검소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멋진 삶이라 생각했다. 스님은 물건을 살때는 이것이 꼭 내게 필요한 것인지 세 번이상 곰곰이 생각해 본 후 사라고 하셨다. 보는 순간 사고 싶어서 충동구매를 하고 후회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 나는 그 후회는 거의 안하고 산 것 같다. 그러나 요즘 해이해진 내 마음을 다시 추수리고자 책장에 꽂아둔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것이다.
「~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p24
「~ 하루에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 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p26
「~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p27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주옥같은 말씀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 간소하게 사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삶이며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인 것이라며 스님은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살라고 하셨다. 3억이 넘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옆집과 다른 특별한 집을 만들고자 새 자재를 다 뜯어내어 폐기물을 만들어 놓고 더욱 더 고급스런 자재를 바르고자 3천 여만원 정도 들여 리모델링을 하는 어떤 이를 봤을때 참으로 씁쓸했다. 많이 입어 헤어지고 닳아져서 옷을 버리는 경우는 요즘 별로 없다. 유행 지난 옷을 입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촌스러워서 버린다.
가구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에서는 웬만해서는 뚝딱뚝딱 손수 조립하고 고쳐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새것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고쳐서 사용하고 바느질하여 덮대서 사용하는 짠돌이 짠순이처럼 TV에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나온다. 물건과 10년, 20년을 동고동락하여 그 물건에 정이 들어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한평생 같이 사는 그들을 보면 깊은 반성이 된다.
불과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못 먹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너무 기름진 음식으로 잘 먹고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죽어가는 현실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터질만큼 팽배해지고 허례허식으로 체면을 세워야 사는 거품이 몽실몽실 부풀어오르는 현실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 꿋꿋하게 대담하게 살아가려면 소신과 철학이 투철해야 한다. 내게 없는 것에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것도 없고 남에게 있다고 하여 마냥 부러워할 것도 없다. 또한 배 아프게 생각할 것도 없다. 내게 있는 것에 자족하며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자긍심으로 살아간다면 이또한 멋진 삶이라 생각하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소유>가 이 땅에 태어난지 30년이 넘었다. 태어난지 30년이 지났다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바로 구운 따끈따끈한 어떤 책보다도 현실을 잘 담은 책이다. 160 페이지의 작은 분량이지만 그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참으로 깊이가 있고 울림이 크다. 내가 다 주워 담기에는 내 용량의 부족함에 한탄할 뿐이다. <무소유>는 이 시대의 잠언이다. 스님은 물질의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 풍족한 세대들에게 일갈(一喝)하신다. 아마 앞으로 몇 십년이 지나도 이 책은 우리들 마음에 오롯하게 남아 세상의 빛을 되리라. 시공을 초월한 <무소유>를 남겨놓고 스님은 올 3월경에 입적하셨다. 가신 뒷모습이 참으로 향기롭고 맑은 분이시다. 스님이 구도의 길에 함께 했던 마지막에 남긴 50여 권의 책을 차례대로 읽어보리라. 그 책을 통해 냄새나는 사람이 아니라 향기롭고 가슴 따뜻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자기소신과 인생철학이 담백하게 들어있는 <무소유>를 나도 소유한다.
사이버독후감 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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