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봄날은 갔네

순수산 2012. 5. 9. 09:48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 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하다
그래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렜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 박남준 시인「봄날은 갔네」 중에서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쌍계사 그 꽃길이 다시금 생각난다.

어쩜 시인은 이리 멋지게 표현했을까...

산방시인 박남준의 정감어린 이 시를

가는 봄날에 한번 읊어본다.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비 내리는 그 꽃길을 꼭 한번

다시 걸어보자

내 인생 청춘이 가기 전에

내 인생 아름다운 시절이 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