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 ”
꿈을 잃고 사는 속물
남편의 안경을 다시 맞추려고 가족이 안경점에 들렸다. 세 명의 가족이 안경을 착용하기에 1년이면 안경값으로 몇 십만원씩 나간다. 주인장이 선별해준 서너개의 안경테를 보면서 어떤 것이 어울릴까, 내심 고민하고 있는 중에 15 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눈에 딱 들어왔다. 순간 뜨거운 것에 데인 것처럼 벌쩍 뛰었다. 경리업무 10년째 내 직업병이 도지는 순간이다.
“안경테가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비싸요. 이거 다 거품 아니예요.”
며칠 전 렌즈는 15 만원으로 하기로 했기에 테까지 하면 30 만원이 결재될 것 같았다. 안경점이 여기 밖에 없느냐, 예상했던 것보다 비싸서 못 사겠다며, 몇 번의 우격다짐으로 주인을 설득해서 결국 총 18 만원을 카드로 긁었다. 속고 속이는 세상 속는 자가 바보 아닌가,하며 남편과 아들녀석을 뒷 세우며 개선장군마냥 안경점 유리문을 박차고 나왔다. 생활력 강한 아줌마의 저력을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오정희님의 《내 마음의 무늬》를 읽기 전까지는.
“30대는 뻔뻔함과 교활함을 습관처럼 익히며 그렇게 자신 있게 경멸하던 ‘속물스러움’은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절대가치는 상대가치로 변모한다” 는 대목에서 막 뒷통수가 가려웠다. 내 기준으로 보면 나는 참 괜찮은 여자인데 남편이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여자였을까, 아울러 안경점 주인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인간으로 보였을까. 뒷감당 못할 질문들을 내게 던져본다.
꿈을 찾아 떠난 여행
오정희님의 정곡을 찌르는 독심술과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함에 혀를 내두르며 읽었다. 분명 산문집인데 꼭 소설책을 읽은 것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문학과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작가가 어머니처럼 정겹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가족이 있음에 문학의 고통을 이겨 나가는듯 싶다. 그러면서도 《혼불》의 최명희를 보면서 같은 연배로서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쓸까, 부러워하는 작가를 보면서 주부인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였다. 선택과 포기를 줄다리기하며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안타까워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역할들을 정신없이 해대며 한 숨 돌리고 나니 40 언저리의 나이가 되었다.
내게 꿈은 과연 있었던가, 꿈이 무엇이였지 그 꿈을 향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허탈한 심정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목차를 훑어가다가 더듬이가 제 4장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에 멈쳤다. 그래서 4장부터 먼저 읽게 되었다. 나는 늘 글쓰기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더께에 감춰진 꿈을 찾아 먼지 탈탈 털어내어 찬란한 빛을 보여주고 싶다.
“작가란 보이거나 잡히지 않는 언어로써 상상의 공간에 대단히 정교하고 복잡하고 입체적인 집을 짓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자신의 시대와 환경을 위기로 인식하는 사람이고 의심하는 사람이다. 빛보다는 그늘에, 영광보다는 상처에, 승리보다는 패배에 기쁨보다는 고통 쪽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의 정의가 내게 무척 거창하게 다가오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이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다. 영 글이 써지지 않으면 책상에서 일어나 무일푼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떠난 순간부터 가슴 절절한 글이 쏟아질 것이다. 그만큼 글은 여벌의 시간으로 쓰는 것이 아니며 몸소 체험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용기가 없었다. 간절한 마음이 부족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데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뒷걸음처지는 현실이 불만이였다. 가족도 걸림돌이요 글쓰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놀음에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죽을만큼 싫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오정희님의 잔잔하지만 힘 있는 필체로 내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날카롭게 각진 돌이였던 내가 조약돌이 되어가는 과정이 글쓰기야. 작가는 이런 모습으로 사는 거라고, 풋내기 양반 환상을 깨시구려.’
오기가 발동한다. 환상을 깨고 온 몸으로 부딪쳐보자. 험난할망정 꿈을 이루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세상 속으로 날려보내는 꿈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자주 읽다보니 글이 자연스럽게 쓰여졌다. 글다운 글을 쓰려고 보니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이 되는대로 공부를 했다. 배움은 끝이 없었다. 사는 동안 평생 배우며 살아야 될 것 같다. 알량한 글이지만 내가 쓴 글에 늘상 감동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예전의 나를 알기에 날로 발전해가는 모습이 보여 기특하기까지 하다. 가슴에 미움을 품고 거짓말로 글을 쓸 수는 없다. 세심한 관찰력과 배려 속에 뜨거운 사랑을 품고 정직해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꿈을 향해 오늘을 사는 의미를 부여한다. 오정희 작가의 《내 마음의 무늬》를 만나게 된 것이 내겐 큰 행운이다. 한약 한재를 달게 달여 먹은듯 마음이 든든하고 훈훈해진다. 내 꿈을 묵살하려는 현실을 강한 힘으로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꿈을 다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다. 자그만 항아리에 담겨진 글감들을 하나씩 꺼내어 글을 완성해야겠다. 어두운 곳에 갇혀 있던 꿈에 날개를 달아 드넓은 세상 속으로 날려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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