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새벽형 남편과 저녁형 아내

순수산 2010. 6. 14. 14:53

 

 

<2008년 11월 비엔날레 관람후 셀카>

 

신혼초 남편은 이부자리에 누워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채 1분도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이 험난한 세상 남편 하나 믿고 결혼을 했건만 이렇게 먼저 잠을 자버리면 나는 뭐하고 있어야 하나. 늦은시간 잠은 오지 않고 나와 타협도 없이 잠을 자버린 남편이 야속하고 야속했다. 결혼을 속아서 한 기분이였다.  사랑하는 사이이면 잠도 동시에 똑같이 자는 줄 알았다. 같이 잠을 자보려고 곤히 자고 있는 남편 옆에 누워봤지만 오히려 정신은 더 말똥말똥했다. 남편은 새근새근 잠을 자는 아가처럼 보였다. 이런 남편을 바라보고 있자니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처럼 외롭고 쓸쓸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도 30분이 지나야 잠을 자는 편인데 남편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죽을 때 같이 죽지 못한 것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잠은 동시에 잘 수 없나보다. 서운한들 어찌하랴. 남편 먼저 재워놓고 숫자를 세든 양을 세든 내 잠은 내가 알아서해야 하니 현실이 슬플 뿐이다.


남편은 새벽형 인간이다. 새벽 4시 20분이면 칼같이 일어난다. 물론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일어난 것이지만 예전에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도 6시 알람을 저장해 놓고 특히하게 알람이 울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내가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6시가 되면 정확하게 알람이 울릴텐데 미리 일어나 끄는 이유는 또 뭐람. 그렇게 일찍 일어난 남편은 세수도 하고 신문을 읽고 거실 청소도 한다. 나는 아직도 꿈나라에서 현실세계로 도착하지 못하고 여전히 찬란한 꿈을 꾸고 있는 시간인데 말이다. 그런 후 7시가 되면 남편이 나를 깨운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면서 항상 아침잠이 부족하다고 투덜댄다. 세수하고 화장 예쁘게 한 후  “여보~ 아침이니 일어나세요.”하며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사랑스럽게 깨우는 아내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남편은 말한다. 하지만 17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남편 소원을 들어준 적은 아직 없었다. 나는 확실한 저녁형 인간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남편은 새근새근 잠을 자고 나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자정 이전에 잠을 자면 선물같이 주신 하루를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것 같아 항상 자정을 넘기고 어쩔때는 새벽 1시가 넘을때도 많다. 남편이 새벽에 많은 일을 하고 뿌듯해 할 때 나는 저녁에 많은 일을 하고 뿌듯해한다. 그러니 새벽형이 더 부지런하네, 저녁형은 게으르네 이런 말은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일어나도 아침에 회사에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 부부의 식생활을 보면 어쩜 이렇게 정반대의 사람이 만나서 살 수 있는지. 신의 적절한 조화의 결과라 본다. 반대 성향을 갖고도 큰 무리없이 하모니를 이루며 살고 있는 우리부부를 생각해봐도 신기할때가 많다. 남편은 고혈압이니 짜게 먹으면 독이 되고 나는 저혈압이니 짜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 남편은 라면을 끓일 때 잡다한 것들을 다 넣어서 내가 보기에는 엽기적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나는 순수하게 라면만 넣고 먹는 스타일이다. 남편은 비빔밥을 엄청 좋아하고 나는 비빔밥을 제일 싫어한다. 남편은 어촌에서 태어나 생선을 제일 좋아하고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육고기를 좋아한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매사 식성이 반대라 가장 불이익을 받은 불쌍한 사람은 아들이다. 남편은 아들한테 엄마가 한 것은 맛이 없으니 아빠가 해준 것을 먹으라고 강요하고 나는 아빠가 한 것은 보기에도 싫고 맛은 당연이 없으니 엄마가 한 것을 먹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아들을 내편으로 만든다.


이처럼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많은 우리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은 이 세상 여자들 중에 서 가장 멋진 여자가 아내인줄 착각하며 살고 있는 남편의 하늘과 같은 이해심이라 생각한다. 나또한 지금까지 본 남자들 중에서 내 남편처럼 멋진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뜨거운 물이였고 나는 차가운 물이였는데 살다보니 서로 썪여 몸에 알맞은 미지근한 물이 된 것이다. 요철처럼 톱니바퀴 물리듯 잘 돌아간다. 나와 똑같은 사람과 평생 살라고 하면 얼마나 삶이 고달프고 퍽퍽하겠는가. 나와 다르기에 내가 갖지 못한 성향이기에 매력을 느끼며 알콩달콩 사는 맛이 난다. 취향은 거의 다르지만 남편과 나는 장남 장녀로서 가치관과 비젼이 같다. 세모와 네모가 만나 세월 속에 깎이고 부딪치면서 동그란 조약돌이 되었다. 지금은 둘의 강한 성격이 서로 합쳐져 혼합된 후 적당히 둘로 나눈 상태이다. 이것이 누구의 성향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그래서 부부는 살다보면 닮은다고 하나보다. (2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