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힐링,나의 산얘기

[사자산] 기력을 소진한 치명적인 산행

순수산 2012. 9. 12. 09:47

 

[사자산]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온가족 1박2일 명절 여행을 계획한 후 답사를 위해 장흥에 갔다.

여행코스로 숯가마 찜질을 한 후 데크 조성이 잘된 억불산 산행으로 정한 후 9시에 울 황제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내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자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가보지 못한 산행을 하자고 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쌀쌀한 편인데, 한낮에는 아직도 태양이 뜨겁다.

1시간 30분 가량 달려서 도착한 함숯가마를 둘러보고 우리는 사자산으로 향했다.

네비가 알려준 길로 올라가니...입구에 도로 아스코 공사를 하길래 한블럭 더 가서 주차를 하고

우리는 등산객 하나 없는 길을 둘이 벗삼아 터벅터벅 걸었다.

 

장흥은 바다와 산이 적절하게 있어 풍요로운 곳인듯 싶다. 인구수 보다 소가 더 많다고 하던데...산행 초입 마을을 거쳐가는데, 아니나다를까

소 우리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긴다. 산행 입구부터 지난 태풍 볼라벤의 피해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나무는 쓰러져 죽어 있었고, 어제의 강한 비로 산은 축축하고 향긋한 향이 아니라 나무썩은냄새가 진동했다.

 

 

 

 

 

 

 

대체적으로 큰 길을 걸어가니

사자산(두봉)까지 1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발견하고

오후 일정도 있었기에 

우리는 초행길이지만 빠른 직코스를 택했다.

그것이 화근이 될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번 장흥 억불산을 너무도 편하게 다녀온 뒤라

장흥의 웬만한 산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 했었다.

 

 

 

 

 

 

 

 

 

 

 

우리는 뚜렷하게 산행길이 없는 길을 올라갔다. 간간이 등산회에서 다녀간

띠가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긴 했지만 낡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0년 전 것으로

추측되며, 그 이후에는 어떤 사람도 다녀가지 않는 험난한 길이였다.

이정표는 분명 1키로 가면 된다고 나와 있는데, 길이 없었다.

이 산을 관리하는 관계 당국에 대실망을 했다.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딱 좋은 상황이였다.

 

"어릴적 시골에서 소와 염소를 찾으러 갈때 이렇게 험난한 산을 가봤기에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산에 올라가지도 못했을거야."

 

 

 

 

가지고 간 스틱으로 어릴적 경험을 되살려 이리저리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는 울황제는

시골생활 했던 것이 지금 큰 덕을 본다고 했다. 산행 중에 이렇게 험한 산행은 그도 나도 처음이다.

얼마나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내 키만큼 자란 풀과 나무를 헤치고 가느라 직코스는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 사자산인 줄  알어?"

"왜 그러는데...."

"이 사자야~  라고 부를때 쓰는 말이라서 그래..."

사실 사자산을 가자고 한 것은 나다. 장흥 관광안내지도에는 그럴싸하게 사진이 나와 있었다.

사자를 닮은 형상이라 사자산이라고 한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오죽 힘들고 험한 산이면 사자산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힘든 산행 중에도 농담을 하며 여유를 찾고자 했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우리가 가면서 길을 만들자,라는 말로 서로 위로 삼았다.

 

"자기야~ 우리 내려올때는 절대로 이 길로 내려오지 말자. 정말로 힘들다."

이리저리 쳐낸 나무가지에서 또는 가시가 달린 줄기에 손이 긁이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여러번 찧었다.

 

 

 

 

 

이것 영지버섯 아닌가...

얼마나 사람이 다니지 않았으면 우리가 가는 길 한 중간에

턱하니 버티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좋다만은...

아직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던지...챙겨간 간식도 먹기 힘들었다.

이렇게 험한 산을 가자고 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인데...

두개의 갈림길만 나오면 치명적인 길치인 울황제는

꼭 다른 길을 선택해서 혼자 갔다오길 여러번....

"어디 갈때는 항상 나를 데리고 가도록 해. 내가 없으면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가려는지 안봐도 비디오네."

 

울황제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도

아주 잠깐 다른 길로 빠질뻔 했는데, 순간적으로 내지르는 내 목소리에

놀라서 바른 길을 찾아갔다.

우린 그래서 늘상 붙어다녀야 한다. 이것을 좋다고 해야되냐... 

 

 

 

 

 

 

 

 

 

 

2시간 정도 험난한 길을 헤치고 올라간 것 같다.

두봉까지 120m를 남겨 놓았다.

그 길목에 산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을 생수병에 담는 울황제에게

"자기야, 그것 마시지 마. 어떤 물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울황제, 쪼그리고 앉아 물 한 병을 받더니 콸콸콸 들이 마신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인 상태다.

 

 

 

 

나또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인 상태다.

 

사자산(미봉)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도저히 두봉과 정상까지는 갈 수 없었다.

산을 오르면서 너무 지쳤기에 우리는 간단히 간식을 먹고

하산을 택했다.

 

 

길이 아니면 오르지 못하도록 표시를 해놓던가...

정말로 오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제발 내려가는 길은 다른 길을 선택하자."

얼마나 오르는 길이 힘들었으면 주차해 놓은 곳까지 더 많이 걷더라고 평평한 좋은 길을 걷고 싶었는데,

우리가 오르는 길이 그나마 풀이 눕혀있어서 더 쉬운 길이였다.

이정표 대로 다른 길을 가려고 해도 길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를때는 헤치고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다섯배는 더 힘들었다.

키 큰 풀과 나무 때문에 발을 디뎌야 할 곳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기에

헛발질을 해서 넘어지고

돌을 밟아서 넘어지고

바닥이 미끄러워서 또 넘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듯 했다.

그 와중에 울황제는 또 바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여 걷길래,

그 길은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 아니라고 한바탕 실강이를 한 후

돌다리도 두들기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자

드디어 우리가 올랐던 길로 내려올 수 있었다.

휴우~~~~~~~~~~~~~~다행이다.

 

 

 

이미 벌집이 되어버린 나무

 

 

오를때는 못봤던 꽃이 산행 하느라 고생했다면

방긋 웃고 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힘들게 마중하는 이런 날이 있다.

허나, 울황제와 함께 둘이 머리 맞대고 궁리하면 헤쳐나가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이 산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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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자려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귀 속이 이상하더니 얼마간 극심한 어지럼증이 나타났다.

그 어지럼증은 우주 속으로 혼자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아 이러다 갈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더니 구토를 하려고 속이 미싱미싱 거려서 아주 혼났다.

한동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급체 증상처럼 보였던지 울황제는 당황하며 열손가락을 사혈기를 사용해 피를 빼고...

이런 모습 처음이라 옆에서 지켜본 울황제가 더 놀랐을 것이다.

 

 

복합적인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신경을 쓰고 기력이 소진되면 세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달팽이관 이상으로 어지럽고 토할것 같은 상태가 되던가

심각한 가려움증이 오던가

대상포진이 온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내 삶을 찬찬히 뒤돌아보니 참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이제 부지런함보다 적당한 게으름을

정상을 고수하는 산행보다 느긋한 산보를

완벽하고 깔끔한 업무처리보다 원만한 상황과 관계성을 더 중요시하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남한테 부탁하자.

 

기력을 소진한 치명적인 산행으로 인해

앞으로 내 삶은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