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혁은 1995년 6월 6일 오후 5시 서울 합정동 로터리 언저리 세실이라는 카페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 첫눈에 반한 그들은 그해 8월23일 혼인신고를 하고 11월 4일 결혼식을 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그러나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는다.
짱혁이 몸담고 있던 어마어마한 조직(?)에서 배우자 신원조회를 하던차 처갓집 본적이 함평이라 한국전쟁 당시 부역자 월북자가가 엄청 나온 것이다. 조직에서는 조직을 택할래, 여자를 택할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1시간 동안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 결과 의리의 짱혁은 여자를 택하기로 했다. 다음날 사령부에 사표를 내던 찰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장관급 장교가 신원보증을 서면 된다는 조건을 알게 되었다. 마침 모시던 분이 화순 출신이라 도와주셔서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했다. 허나 남편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내를 맞이했다는 것을 모르고 살던 내 고교동창 성희는, 결혼 몇 년이 지난후 남편의 선후배들 술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캬~ 아무리 생각해봐도 짱혁은 멋진 싸나이다.
그후 평범하게 살다가 13년후 짱혁이 총대 맬 일이 생겨서 퇴직을 하고 집짓는 사업을 하다가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게 되고, 한국이 진저리가 나서 그후 중국으로 단돈 삼십만원을 들고 혼자 건너갔다. 중국에서 사업을 해서 살아 남으면 전세계 어딜가도 굶어죽지 않는다고 할만큼 정말로 힘든 생활을 보냈고, 1년 후 가족을 중국으로 불러들여 10년째 살고 있다. 타국에서 가족은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 사랑하는 아내는 험만한 사선을 같이 넘나든 전우와 같다. 힘들어서 같이 울기도 많이 했다. 둘째아들 학업이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면 한국에 들어와 빛고을 광주에 터전을 잡고 싶다고 한다.
짱혁은 지금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도 하고 있다. 20여 년전 아내를 얻기 위해 큰 결단을 했듯이 이제 인생 2막을 멋지게 펼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의 결단이 풍성한 결과로 마무리 되기를 글쓴이는 간절히 바란다. 어느날 광주로 정착한다면 따뜻하게 친구네 가족을 맞이해 주리라.
“사랑한다. 성희야, 짱혁 화이팅!”
*[사전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짱혁의 미니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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