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독서, 나를 만들다

폭력, 아름다움, 생명

순수산 2016. 6. 9. 10:18


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이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과 프랑스 공쿠르상을 비롯하여 세계 3대 문학상이라 일컫는데 아시아 최초로 그것도 한국의 작가가 수상하게 되었다.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한강은 2002년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쓴 중편소설 세 작품을 『채식주의자』에 담았다.


『채식주의자』 책은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를 책의 표제로 놓고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란 소설로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다. 『채식주의』는 남편의 눈으로 바라본 아내 영혜의 이야기다. 어느날 영혜는 살생당하는 동물의 모습이 꿈에 자꾸 나타나 잠을 이룰수가 없게 된다. 악몽에 시달리는 영혜는 채식을 선언하며 냉장고에 있는 모든 고기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심지어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구두도 다 버린다.


잠도 못자고 날로 말라가는 영혜는 그것으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가 어그러진다. 언니가 큰집으로 이사를 가서 집들이를 하는 자리에서 사건은 극에 달한다. 베트남 참전용사 출신인 장인이 영혜의 뺨을 때리며 우격다짐으로 입 안에 고깃덩어리를 밀어 넣자 영혜는 참다못해 거실에 있는 과도로 본인의 손목을 그어 버린다.


“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서,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p60~61>


어릴적 영혜를 물었던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서 아버지는 달렸다. 서서히 죽여야 맛이 좋다며 여러 바퀴를 달렸다. 죽은 개를 끓여서 가족이 잔치를 했고 영혜도 거리낌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죽어가는 그 개의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서 매일 밤 영혜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점점 말라간다. 손목을 그은 날, 형부의 등에 업혀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지만 다음날 영혜는 상체를 벌거벗은 채 병원 분수대에 앉아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1년 전에 이 작품을 읽었는데 채식주의자와 연결해서 읽으니 훨씬 더 이야기가 실감난다. 『몽고반점』은 비디오작가인 형부의 눈으로 바라본 처제 영혜의 이야기다. 처제의 엉덩이에 푸른꽃 몽고반점이 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담은 형부는 그 교합하는 사람이 본인과 처제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처제는 아내보다 훨씬 못생겼지만 가지를 치지 않는 야생의 나무 같은 힘을 느끼게 한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일은 욕망을 실현하는 것뿐이라며 형부는 처제의 알몸에 꽃을 그린 후 옛애인인 화가에게 본인의 알몸에도 꽃그림을 그려달라고 한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p104>


타인의 남·녀가 교합했다면 예술이라 말하겠지만 그 남·녀가 알몸의 형부와 처제였기에 문제가 큰 것이다. 오로지 예술을 위해서,라며 비겁한 변명을 아내한테 얘기하고 싶겠지만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불쌍한 처제를 형부가 덮친 격이 되었다. 입에 올리기도 힘든 불미스러운 일이 비디오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것을 아내 인혜가 보게 된다.


『채식주의자』가 먹기 싫은 음식을 통념상 억지로 먹여서 사단이 된 음식에 관한 폭력이라면 『몽고반점』은 꽃들의 교합이라는 전체하에 무척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지만 약한 자를 이용한 예술의 빗나간 폭력의 한 형태라 생각한다.


『나무 불꽃』은 동생 영혜를 바라본 언니 인혜의 이야기다. 인내의 힘으로 쓰라림을 억누른 채 일상의 등짐을 묵묵히 지고 걸어가는 인혜가 어떻게 보면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보인다. 5살 아들 지우를 키우면서 화장품 가게를 하고 있다. 예술을 한답시고 가정을 등한시하는 남편의 몫까지 꿋꿋하게 해내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인혜이다. 삶에 지쳐서 정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런 인혜인데, 남편과 동생의 정사로 인해 한자락의 알량한 희망까지 저버리게 된다.


그날의 사건 이후 남편과는 헤어지고 동생은 정신병원에 감금 당한다. 동생은 채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음식을 거부하게 되고 나무가 되려는지 물만 찾는다. 아무리 미워도 이혼당한 동생은 보살펴야 했기에 동생이 어릴적에 좋아했던 음식을 챙겨들고 병원으로 면회를 가지만 동생은 사람으로서는 점점 죽어가지만 나무가 되려는지 쑥쑥 커가는 듯 싶다.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나 이런 음식 필요없어. 물이 필요한데.”<p180>


자신을 집어삼키는 구멍 같은 고통 속에서 인혜도 영혜처럼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어린 아들 지우만 없었다면 그녀도 끝내고 싶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인혜처럼 꾹 참고 사는 여자는 요즘 드물 것이다. 그렇게 사는 여자는 상처가 곪아서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터지기 전에 치료를 잘해야 한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영혜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여 생명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볼수만 없어서 정신병원에서 큰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인혜는 구급차에 영혜를 실어 함께 정신병원을 나온다. 감옥같은 정신병원을 나와서 자매가 큰병원에 갔는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릴적에 두딸에게는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다. 결혼을 한 인혜와 영혜는 남편들의 무관심 속에 산다. 좀더 아내한테 관심을 보이고 배려를 했다면 아내가 무엇으로 힘든지 서로 고통을 나눴다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 생각없이 먹었던 육식이 인간이 동물에게 가한 폭력은 아닌지, 영혜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한다.


“영혜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직 누군가가 실천하는 행위와 사람들이 그것의 속성을 규정하는 행위 사이에서 ‘채식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셈이다. ‘채식주의자’는 사람들이 그녀의 행위를 이해하기 쉬운 속성으로 환원한 호칭에 불과하다고 전한다.” <문학평론가 허윤진의 해설 중에서>


지난주, 모임에서 뜨거운 여름을 잘 이겨내자며 흑염소탕을 먹었다. 쫄깃하고 날창날창한 수육도 몇 점 먹었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 되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또한 가족과 외식을 할 때나 직원들과 회식을 할 때 고기가 빠진 적은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는 무의식 중에 육식을 하는 생활에 젖어 있다.


내 생존을 위해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죽여 음식으로 먹는다는 것에 일말의 죄의식을 갖게 되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후부터는 아무래도 육식을 점차적으로 줄이려고 한다. 『채식주의자』 책은 폭력과 아름다움과 생명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