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동정 없는 세상

순수산 2012. 10. 19. 14:17
 

 

 

 초등학교 5학년 아들녀석은 연민의 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좀 안됐다 싶으면 항상

“엄마, 너무 불쌍해”한다.

그 ‘불쌍해’라는 말이 내가 봐서는 도저히 안 불쌍한 상황인데도 불쌍하다는 것이 문제다.

 

 며칠전 남편이 헌혈을 한다기에 아들과 함께 헌혈의 집에 동행했다. 남편은 헌혈을 하고 아들과 나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한참 책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들이 대뜸

“엄마, 저 형아 너무 불쌍해”

“누구?”

“초코파이 먹고 있는 형”

“왜 불쌍해”

“너무 맛있게 먹잖아, 그리고 콧구멍이 너무 크잖아”

“엄마는 불쌍하다고 말하는 네가 더 불쌍해!”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은 헌혈을 하고 맛있게 초코파이를 먹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씩씩하게 보이는데 왜 아이 눈에는 불쌍하게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 생각에는 집에 먹을 밥이 없어서 헌혈을 하고 초코파이를 밥 대용으로 먹는다고 생각했을까.

아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일주일 전 비가 오는 날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우산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 저 아저씨 너무 불쌍해”

“왜?”

“비 맞고 자전거 타고 있잖아”

“그럴수도 있지”

제 딴에는 완벽에 가까운 어른이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고 가니까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한달 전 이사를 하면서 책장과 의자를 사려고 가구점에 갔는데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디자인은 마음에 들면서 좀 더 저렴한 가격대를 찾다보니 아르바이트 학생을 피곤하게 했다.

불쑥 아들녀석이 한쪽으로 나를 불러내더니

“엄마 저 형이 불쌍해”

“왜 그러는데”

“우리 때문에 왔다갔다 힘들잖아”

“물건을 팔려면 그럴수도 있지”

“그리고 저 형아 신발이 구멍 나서 불쌍해”

“유행 따라 신발을 여러 켤레 사는 형들보다 얼마나 터프하고 멋지냐.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용돈도 벌어 학비에 보태 쓰는

저 형이 엄마는 너무 자랑스럽다”

아들은 여전히 그 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처연하다.

 

형제가 없는 아들녀석은 형제가 많은 아이들보다 여리다.

앞으로 험난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이 앞선다.

책을 많이 읽어 감정이 풍부한 것도 있겠지만 당차고 똑부러지는 맛이 없다.

항상 아들이 불쌍하다고 하면 “엄마는 네가 더 불쌍해”라고 맞불작전을 쳤지만 정작 불쌍한 사람은 내가 아닌가, 싶다.

아들녀석처럼 세상을 불쌍하게 바라본다면 타인에게도 정이 갈텐데.

나는 늘상 세상을 바라보는 초점이 이해타산적이다.

아들녀석이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듯 앞으로 “불쌍해”라는 심정으로 이 엄마도 세상을 바라봐야 될 것 같다. 

 

<월간잡지 샘터 200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