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월급봉투 대신 용돈봉투

순수산 2012. 10. 24. 17:36
 

 

 

 


 

야근까지 힘들게 근무하는 남편의 퇴근길은 항상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월급날만큼은 분위기가 다르다. 나는 맛있는 반찬을 특별하게 준비해 놓고 남편을 기다린다. 아이 또한 용돈 받을 생각에 아빠를 기다린다. 월급날이 되면 퇴근하는 남편의 발걸음도 씩씩하다. 월급봉투를 내미는 남편의 손에서 힘이 묻어난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남편한테 월급봉투을 건네 받으면 남편이 더욱 믿음직스럽고 한달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는 생각이 전해졌던 예전의 월급날 풍경이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면서 기다림이 없어졌다. 특별히 콧노래 부르며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지도 않고 아이 또한 아빠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달에 한번 특별한 이벤트가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없게 되었다. 남편에 대한 감사도 예전보다 덜한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통해 가장 타격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남편이다. 월급은 예전 월급봉투에 담아 올때보다 더 큰 액수로 통장에 입금이 되는데도 남편의 위치가 더 초라해지고 씩씩했던 발걸음도 없어졌다. 편리함을 수용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댓가로 톡톡히 치른 셈이다. 


월급을 통장으로 서너번 받은 후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랑을 담은 용돈 봉투를 거꾸로 건내기 시작했다. 남편의 기를 살리자,라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애편지가 되어버렸다. 먼저 월급날 남편에게 줄 용돈을 은행에서 빳빳한 신권으로 찾아 놓는다. 그런 다음 A4 용지에 한달 동안 가족끼리 여행했다든가 가족 행사가 있었다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상단에 넣어 구도를 잡고 용지 하단에는 내 마음을 담는다. 요즘같은 불볕더위에 땀으로 목욕을 하며 힘들게 일하는 남편에게 고생 많이 했다면서 가슴 절절하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빼놓지 않는 말은‘알뜰살뜰 절약하며 잘 쓰겠습니다’로 마무리를 장식한다.  


월급봉투는 사라졌지만 대신 사랑을 담은 용돈 편지를 건네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남편한테 ‘편지 받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싫지는 않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얼굴 보면서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월급날 남편한테 쓰는 편지가 애정의 소통이 된다. 용돈 봉투를 건네는 내 손길이 사랑으로 푸근하다.

 

-2007년 9월호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