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황제께서 진짜 황제가 되셨다. 남편을 왜 "황제"라고 하여 만천하에 겸손이 출장간 멘트를 날리고 있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핸드폰에 남편 전화번호를 입력할때 황제라고 입력했다. 우리 가정의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인 울 남편을 한 가정의 왕으로 모시고 싶어서이다. 남편 이름 석자를 입력하기엔 웬지 타인같고...한참 연애하는 젊은이처럼 달링이니 자기야이니하며 입력하기에도 웬지 그렇고 해서 큰 의미에서 우리집 황제가 된 것이다. 그럼 남편 핸드폰에 내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이름을 뭘로 저장했을까....당근 황후로 되어있다.<내가 입력해 놓았다. ㅋㅋ> 그러니까 간혹 블러그 글 중에서 황제라 칭하니 어떤 분은 이름이 황제인줄 알고 깜박 속았다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문자를 주고받을때는 존대어를 쓴다. 아주 깍듯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황제가 진짜 황제가 된 이유를 말해야겠다.
지난주 토요일 울황제가 교회 체육관에서 배구시합을 하다가 그만 발목이 접질러졌다. 순간 걷지도 못하고 10분 사이에 복숭아뼈 주변이 부어오르는데 지켜보는 이들이 놀랄정도로 부기가 심했다. 냉찜질을 하고 응급실에 가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깁스를 하면 나을때까지 오래 걸릴것 같아 미루고 한의원에 가서 피빼고 부항 뜨고 했다. 한약도 먹고 양약도 먹고 요즘 울황제가 고생이 참 많다. 처음에는 남편이 힘들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나한테 고생이 많다고 한다. 왜 내가 고생이 많을까..생각해보니 1주일이 지나고 보니 이제사 그 감이 온다.
"리모콘 !"
"커피 !"
소파에 앉아 주문만 하면 바로 대령해야 한다. 모든 일을 소파에 앉아 해결한다. 걷기가 불편하니 앉은자리에서 대략 모든 일을 처리한다. 아주 편히 살다가 때아닌 남편 시집살이가 맵다. 원래 남편 성격이 남에게 시키는 성격이 아니여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아내들이 항상 불쌍했다. 또 맞벌이 부부이기에 집안에서 여자 일이 따로 있지 않고 설거지도 청소도 내 일처럼 잘해주는 남편이 이렇게 돌변했으니 적응이 안된다. 물론 지금은 다리를 다쳐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아주 익숙치 않는 우리집 풍경이다.
"그러니까 스포츠는 이기자,가 아니라 즐기자,라고 내가 말했지요."
뭐 이런 말을 남편한테 볼멘소리로 수차례 얘기했지만 막상 스포츠게임에 들어가면 사람이 180도로 돌변한다. 거의 너 죽고 나 살자,이다. 남편이 거실에서 스포츠를 보고 있으면 아들은 제 방에 들어가고 나는 안방에 들어간다. 승부욕이 강한 남편은 스포츠 볼때는 감독이자 코치이자 해설자가 된다. 얼마나 흥미진진(선수들한테 막말을 해댄다 ㅋㅋ)하게 보는지 거의 생중계를 한다. 그래서 응원팀이 지면 속상해서 그 여파가 우리들한테까지 오기에 아예 아들과 나는 각자의 방으로 피신을 떠난다.
"집사님이 이팔청춘인지 아세요? 낼모레 오십입니다."
목발 짋고 교회가면 보는 사람들마다 걱정하며 농담을 하신다. 탁구나 한게임하자며 아예 약을 슬슬 올린다. 늘 남편한테 보호를 받았고 큰딸을 키운다는 심정으로 아내를 지극히 이해하며 살았던 남편이였는데 지금은 내가 남편을 보호해주고 운전기사까지 하려니 몸이 고달프다. 어여 빨리 나아서 목발 던져버리고 깁스 빼버리고 <어쩔수 없이 반깁스를 했다> 두발로 스스로 걷기를 바래본다. 목발을 짋고 다녀보니 내가 두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이고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며 발이 불편한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분간 황제 노릇을 톡톡히 할 것 같다. 발목이 다 나을때가지는 어쩔수 없을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받아줘야 될 듯 싶다. 우리집의 황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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