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처럼 / 3살때 화순 백아산에서...>
일요일 아침 세탁을 하려고 남편의 바지를 만지다가 주머니에서 지갑이 ‘툭’ 떨어졌다. 삼단으로 접은 파란천 지갑은 까만 양복바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들의 지갑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지갑이 남편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게 된 사연은 웃지 못할 씁쓸한 사연이 있다. 며칠전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갑을 서로 바꾸자고 했다. 아버지는 왜 바꾸려고 하는지 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가도 알 것 같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자’라고 선뜻 응해 준 것이다. 아버지의 승낙으로 설레임 속에 제 지갑을 가져와 들어있는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 놓다가 “절대로 안된다”는 내 호통에 기가 꺾여 제 지갑도 팽개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학교에 간 것이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무턱대고 소리를 지른 것은 코흘리개나 가지고 다니는 지갑을 남편이 소지한다는 것이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싫었다. 아들은 가죽지갑을 며칠 갖고 다니면서 아버지처럼 멋진 남자가 되어본 후 되돌려 주었을 것인데 아이 생각을 묵살해 놓고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고 틀에 박힌 설교부터 시작한 나였다. 그 반면 아이의 체험 속에 스스로 터득하기를 기다려 주는 쪽은 늘 배려 깊은 남편이다.
<아빠처럼 / 5살때 패밀리랜드>
그날 저녁 남편은 아들의 청을 일단 들어주었다. 그리고 한달동안 서로 바꿔 사용해보고 그래도 아들이 원한다면 계속 바꿔 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명함, 운전면허증, 신분증, 신용카드, 주유카드를 파란 천지갑에 넣고 아들은 도서대출증, 장남감카드, 스티커, 금딱지 몇장을 가죽지갑에 넣고 다닌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따라한다. 아버지가 무릎에 파스를 붙이면 제 무릎에도 파스를 붙여달라고 떼쓰고 아버지의 무릎보호대를 슬며시 제 무릎에 감싸고 자기도 한다. 밥을 먹을때도 아버지처럼 큰 그릇에 담아 달라고 하고 고장난 아버지의 핸드폰을 며칠동안 학교에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다. 뭐든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아들이다.
<아빠처럼 / 7살때 농원>
아버지의 인기가 치솟고 서로 긴밀한 관계가 된 것은 축구의 힘이 크다. 제 축구 실력이 월등히 좋아지면서 아버지의 위상은 극에 달했다. 몇 달 동안 아버지는 아들의 축구감독이자 코치요 상대선수이자 열렬한 응원자가 된 것이다. 솜털 보송한 아이여도 남자인지라 아버지와 스포츠를 보면서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미국 프로레슬링은 아버지가 조언을 구할만큼 외국선수 이름을 다 꿰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던 엄마는 아버지 다음으로 밀려났다. 남자들만의 어울림 속에 여자가 낄 틈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특히 가족끼리 산에 오르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걸으면서 연약한 여자를 보호해야 하며 씩씩한 사람이 되려면 군대를 갔다와야 한다며 남자다운 남자에 대해서 곧잘 얘기한다.
<아빠처럼 / 7살때 농원>
남편은 낙도(落島)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교육 때문에 초등학생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가족의 끈끈한 정에 갈증을 느꼈고 특히나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어려웠던 그 시절 섬 사람들의 자녀들 중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일한 학생이 될만큼 시아버지의 자식사랑은 대단했다. 그러나 남편은 대학을 보냈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아들의 소질과 재능은 무엇이며 아들의 진로를 얘기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다정한 아버지를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버지에게 살가운 정을 느끼지 못하고 어렵게만 여기는 남편이 안쓰럽다. 그렇기에 아들에게만큼은 대물림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언제라도 고민을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이자 형같은 아버지가 되려 한다. 아들의 눈높이로 대화하니 자연스럽게 생각과 인격을 존중하게 되고 아이 또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된다. 때론 아이와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고 예쁘다며 아들을 쥐어짜서 울릴 때, 서로 알통이 크다고 으스대며 배에 왕(王)자를 새긴다며 볼록한 배를 힘들게 접을때는 영락없는 아들 친구같다.
<아빠처럼 / 9살때 월드컵경기장에서>
지금 아들에게 아버지는 전지전능한 신이요 우주임에 틀림없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만능해결사로 변신하고 이성에 호기심을 갖게 될 쯤에는 고민해결사로 나설 것이며 고단한 남자의 일생을 얘기 할때는 끈끈한 동지애로 서로 위로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서도 제 아버지를 지금처럼 존경하길 바란다면 크나큰 욕심일까. 아들이 있어 아버지는 세상 살맛이 나고 아들에게 아버지는 버팀목 그 자체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선구자이며, 미지의 세상을 건너는 풍랑(風浪)같은 삶속에 아들의 든든한 바람막이 될 것이며 단단한 돌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2001년)
<아빠처럼 / 16살때 고창 선운사에서>
아들과 함께 추억알범을 보다가 아빠처럼 똑같이 따라하는 포즈가 참 많이 보였다.
아빠를 좋아하는 아들이 아빠처럼 되고 싶어서 따라서 했을텐데...
보는내내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2001년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였을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글을 쓴 적 있는데...
이 사진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아 다시 올려본다.
방학을 해도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 <일주일 방학> 고1 울아들에게
매일 '짜증나'를 입에 달고 사는 아들에게
컴퓨터 게임 그만하고 공부 좀 하라고
소리치는 아빠에게.......
그시절 흐뭇한 글을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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