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고독이 필요해~

순수산 2011. 2. 9. 09:06

 

 

마냥 즐겁고 행복하면 진중하게 나를 들어다볼 시간이 없다.

햇살이 따사로우면 밖으로만 나가고 싶어지듯,

마음에 비가 내릴때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며칠 전 고독을 잘근잘근 씹을 시간을 아주 짧게 갖었다.

 

의견충돌로 울황제와 가뭄에 콩나듯 모처럼 트러블이 있었는데,

몇시간 동안(고작 하루도 못 넘기고 부부싸움 종결!) 많은 생각을 했다.

"너는 왜 나처럼 그렇게(깊고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 없니?"

....

 

웬만해서는 쿨하게 살려고, 나름 노력하는데, 가장 가깝다는 사람이

이런 말로 나를 평가해버리면 정말로 화가 난다.

"좀 더 부연설명과 함께 얘기를 풀어서 해주면 안되나?"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그리고 칠남매의 장남인 울황제의 위치와

사남매의 장녀인 나의 위치가 팽팽한 줄에 서게 된다.

나보다 일곱살이나 더 먹는 사람이 전부 자기처럼 그렇게 생각하라면 무리 중에 무리가 아닌가.

 

 

의견충돌을 하지 않았다면, 명절연휴 가족과 함께 영화라도 한 프로 보려고 했는데...

마음이 상해서 그만두고, 점심시간이 되었을때 밥도 차려주지 않고 나의 피난처로 행했다.

아침식사를 10시 정도에 했으니 배는 고프지 않고, 뭐 알아서들 챙겨 드시겠지,하며 휑~하니 나간 것이다.

"나, 도서관 갔다올께~~~~"

사실, 갈 곳이 여기밖에 없다. 그리고 여길 무진장 가고 싶었다, 그런데 바빠서 못갔으니 기회는 이때다,하고

속으로는 룰루랄라~쾌재를 부르며 간 것이다.

 

모처럼 찾은 도서관을 둘러보니, 가슴이 떨린다. 구매하거나 그냥저냥 들어온 책은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직접 빌린 책을 아주 모처럼 읽게 된다.

동생이 도서관에 근무하다보니, 읽고 싶은 책 빌려달라고 해서 집이나 일터에서 읽었으니 

도서관에 직접 간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2층 종합자료실 서가를 두리번 거리는데,

지금 내 심정을 딱 위로해 줄 책 제목이 눈에 띄였다.

<괜찮다, 다 괜찮다> 작가 공지영님의 책이다.

(공지영님의 책을 거의 다 읽었기에 이 책을 읽는동안 사실 무척 신났다)

 

괜찮다고 하는데, 마음 상하게 꿀꿀하게 지낼 수는 없지. 오늘 하루도 나에게는 선물같은 하루인데...

혼자 위로하며, 지하1층에 있는 조용한 성인학습실에 내려가서 5시간 정도 읽다보니 한 권을 다 읽었다.

저녁 10시까지 읽고 싶었는데... 하여튼

확실히 책 읽기를 잘했다.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분명 집에서 나갈때는 기분이 별로였는데, 집에 들어갈때는 훨씬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겠다.

 

 

집에 도착하니,

그런데......우리집 두남자들~ 내가 차려주지 않으니 점심을 쫄쫄 굶고 있었군.

점심 먹은 흔적이 없다. 주방이 깨끗하다. 역시나~~

나는 얼른 소매를 걷어 붙이고 선물로 들어온 소고기를 양념소스에 재워서 후라이팬에 앉힌 후,

"자기야~ 고기 좀 구워줘~"

<우리집의 고기는 울황제가 제일 잘 굽는다.>

바지락 넣은 순두부 된장국을 아주 뚝딱 만들었다.

밥은 검정쌀과 현미를 넣어서 고슬고슬 지어서 한상 가득 차렸다.

온가족이 정성과 사랑으로 차린 따뜻한 밥을 함께 먹으니 정(情)이 새록새록 샘솟는다.

 

왜?  고독이 필요하냐구요?

그러니까, 때론 고독을 느껴봐야 혼자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행할 수 있으며,

나는 좋아하는 책을 읽었지만...

고독을 느껴봐야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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