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정전

순수산 2011. 3. 23. 08:55

 

*정전때 베란다에서 바라본 아들 학교 풍경/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다.*

 

 

모처럼 퇴근 후에 곧바로 운동을 다녀왔다.

<일주일에 두번가면 많이 가는 헬스클럽...>

9시에 귀가해 간단히 저녁식사를 혼자 하고

이제 주부로서 요리를 실력발휘(?)할 시간이 되었다.

날마다 하지 못하기에 오늘 밤에는 국을 두개 끓여야겠다.

<생선국은 아빠 것, 된장국은 아들 것이다>

 

가스렌즈 양쪽에서 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됐다

순간 캄캄해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시 밝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실 한 쪽 벽에 붙어 있던 등이 켜진다. 저 등이 거기에 있었던가?

그러더니 한참이 지나도 정전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켜진 등은 비상시에 켜지는 등인것 같다.

 

예전에는 정전이 되면 1분도 안되어 다시 환하게 불이 들어오던데...

이상하게 오늘 따라 감감 무소식이다.

 

울황제도 퇴근후 운동복을 갈아입고 곧바로 운동을 갔기에

혼자 캄캄한 집에 있으려니, 좀 그랬다.

곁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비상등으로 거실은 어느 정도 환하지만....일상적인 것은 하기 힘들었다.

이럴때 왜 그렇게 가족 얼굴이 떠오르지...

 

순간, 쓰나미, 지진으로 힘들어하는 일본이 생각난다.

추위와 어둠에 또한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2차적인 대란이 벌어질텐데...

얼마나 상심이 되고 마음이 아플까.

비행기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이웃나라인데...

이웃나라의 힘듦은 곧 우리의 힘듦일텐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정전이 된 후 집안을 살펴봤다.

요리하면서 성가곡 들으려고 켜놓은 노트북은 아직도 화면에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머잖아 어두워지겠지.

충전을 위해 콘센트에 꽂아둔 핸드폰의 빨간불이 없어졌다.

따순 물을 데우는 보일러의 빨간 불도 없어졌다.

잡다한 음식을 담고 있는 냉장고도 불이 나갔다.

 

운동을 하고 곧 돌아올 울황제와 학교에서 돌아올 울 아들이 올텐데...

11층까지 힘들게 걸어 오는 것은 아니겠지.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확인해보니..그건 이상없다.

순간 불빛이 사라지니 내 머리속도 어두컴컴해졌나보다.

엘리베이터는 일반전기 하고는 다르지...

 

베란다 창을 통해 내려다본 근린공원 가로등은 켜져있다.

이것도 일반전기하고는 다르지.

 

"집사님~훈련숙제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데 전기가 나가버렸어요. 이제 우짠다요??"

옆동네 아파트에 살고있는 셀가족이 정전이 되어 피해막심하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정말로 빛이 없이 살아간다면 어떨까?

언제가는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날이 오겠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래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불빛이 사라지니 만감이 교차된다.

옛날에는 호롱불로 어찌 살았을까?

 

아들이 돌아오고 남편이 돌아오자 나는 이 정전사태를 주절주절 얘기했다.

그리고 든든한 우리집 두 남자가 들어오니 어느정도 안정이 되찾았다. ㅋㅋ

 

정전이 된 후 30여 분이 지났을까...비상등이 잠깐 꺼졌다가 다시 켜지고 다시 꺼지더니

순간 밝은 빛이 눈부시게 들어왔다. 어느때 보다도 밝게 비춰졌다. 

 

한국전력의 문제로 이 주변이 잠깐 정전사태가 되어 주민 여러분에게 불편함을 줘서 대단히 죄송하다며,

결코 관리사무소 문제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관리소장의 안내멘트가 나왔다.

정전사태는 이로서 끝났다.

 

이날따라 생선국과 된장국이 별나게 맛나게 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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