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춥고 배고파~"
10시 20분, 학교에서 돌아온 네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한테 하는 말이구나.
거지의 3대 조건 중에서 2개를 갖췄다고, 엄마는 농담을 던졌지만 많이 피곤한지 너는 반응이 없구나.
빠르게 우유를 한컵 데우고, 네가 며칠 전 순대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오늘 이모부가 순대를 사줘서
쟁반에 삶은 계란과 음료수까지 한가득 너에게 차려주니 너는 개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는다.
네 입으로 간식이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엄마는 배부르고 행복하다.
엊그제 봄맞이 대청소 중에서 옷방을 청소하다가 10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디지털피아노를 네 공부방에 들어놓았더니
너는 유치원때 피아노학원을 조금 다녔던 기억을 되살리며 연습교본을 찾아와서 더듬더듬 연주하더라. 그런데 그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어.
2주 전에 교회 고등부 찬양단 싱어로 발탁되어 좋아하던데,
아무래도 신디사이저 연주하는 친구들 보면서 너도 피아노를 쳐보고 싶었나 보더라.
<엘리제를 위하여~>
10년만에 기억을 되살려 쳐본다. 밤 11시라 소리를 크게 할 수 도 없고...
때론 힘들고 지쳐 쓰러지고 좌절할때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금새 힘이 나고 되살아 난단다.
단, 네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먼저 알아야겠지.
너는 음악을 들을 때, 찬양을 할 때 무척이나 좋아하더라.
"엄마, 내가 한번 쳐 볼테니 맞은가 봐봐."
엄마도 학교 다닐때나 배웠던 음표들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귀에 익은 음이니 너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마,하고 네 방으로 따라갔다.
너는 악보를 의지하지 않고 손가락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리고 듣는 귀의 기억을 되살려서
열심히 음을 만들어 가더라. 음이 틀리면 다시 정정해서 기억에 담아뒀던 그 음을 찾아내서 연결하더라구.
참 신기하고 신기했다.
<고양이의 춤>
살다보면 머리의 기억보다는 우리의 손과 발과 후각과 미각과 청각과 가슴으로 전해지는 기억이 훨씬 오래 가더라.
엄마도 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이라 특히 오른쪽 숫자 자판을 두들기는데 간혹 공인인증 같은 번호를 숫자로 쓰려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른쪽 숫자 자판을 한번 두들기면 바로 기억이 되살아 나더라구. 머리보다는 손에 익은 기억력을 끄집어 낸 것이지.
너는 <엘리제를 위하여>, <고양이의 춤>, <캐논 변주곡>을 어렵사리 연주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보다 엄만 네가 더 자랑스러웠다.
10년 동안 한번도 쳐본적 없던 건반을 오직 기억력으로 이 세곡을 연주했으니....엄만 이것이 더 기특하더라구.
특히 캐논 변주곡을 여러번 쳐 보더니 어느정도 감이 온다고 네 스스로도 놀라더라.
<캐논 변주곡>
두세 번 쳐 보더니 8살때 쳐 본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나 행복해 하는 아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윤수야 ~
짧으나마 연주를 하고 흡족해하는 네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더라.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더 행복했어.
요즘 여드름 때문에 고민 많이 하고 있는 우리 아들~
아침에 일어나면 아기 피부처럼 뽀송한 피부로 변신된 네 모습을 꿈꾸렴.
네 방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너를 생각하니
오늘 하루도 일터에서 학교에서 다들 열심히 살았을 우리가족을 생각하니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
자정이 넘었구나. 이제 엄마도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 같다.
내일 업무에 지장 없으려면...그럼 굿나잇~~~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이란다.
알았지. 피아노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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