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5 엄마를 위해 오빠는 티켓값을 지원하고 여동생은 티켓을 예약해 주고
나는 엄마의 기사를 자청해서 엄마와 단둘이 [남진 쇼] 공연을 보려 갔던 날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위해 휠체어를 대여해 와 엄마를 편하게 앉게 했다.
<센터 로비에는 좌석이 없어 1시간 이상 서서 기다리는 나이 드신 분들의 항의가 들어올 정도였다>
지난 주 수요일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검사를 해놓고 결과를 보러 갔는데, 수치가 높으니 바로 입원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엄마는 일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하셨다. 그때 의족을 하셨고
남은 한쪽 다리도 다쳐 성하지 않는데 70 평생을 살아오니 그 다리도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 한달 전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다.
"다리가 아파도 꿋꿋하게 다녔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지팡이라도 짚어야 다니겠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다.
엄마의 이 말씀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통 앞에 강한 자존심도 내려놓아 버린 이제 모든 것을 수용해버린 상태였다. 배움은 없지만 정신력은 강한
엄마인데,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엄마는 날로 연약해지고 마음까지 약해지셨다.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기에 매주 교회에서 엄마를 보더라도 많은
대화는 못하고 식당에서 점심를 챙겨 엄마를 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일주일마다 보는 엄마는 더 연로해지시고 더 아프셨다.
엄마집 바로 옆 병원에 입원수속을 밟아 입원시켜 놓고 세면도구이며 물병과 화장지 등 입원하는 동안 필요한 용품을 가지러 엄마집에 갔다.
주인 없는 텅빈 집은 쓸쓸했다. 다리가 불편하여 엄마는 집안 정리정돈을 잘 못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또 쓰려온다.
스킨 로션 등 화장품을 챙기려고 화장대를 보니 언제 샀는지도 모를 먼지가 뒤덮인 화장품 몇개가 널브러져 있다.
내가 딸이 맞나,싶을 정도로 엄마한테 참 무심했다는 생각에 뾰족한 뭔가가 가슴을 꽂고 지나간다.
평소 살갑지 못한 큰딸이라 잘 챙겨드리지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직접 사시라고 현금으로 드렸는데 엄마의 살림살이는 변화가 없었다.
베란다 창문을 닫기 위해 슬리퍼를 신었는데 미끌미끌 넘어질뻔 했다. 슬리퍼 바닥을 보니 너무 오래 신어서 반들반들해진 상태였다.
나는 당장 베란다의 슬리퍼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도저히 엄마집에서 챙길 화장품이 없어서 내가 받아놓아 샘플을 몇개 챙기고 새것이나
진배없는 슬리퍼도 우리집에서 하나 챙겨서 (슬리퍼 살 시간이 그땐 나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한테 갔다.
"집에서도 잠을 거의 못잤는데, 여기서는 또 어떻게 잘까 싶다."
숙면이라는 것을 취하지 못한 엄마는 이날 평생 단잠을 주무시지 못했다. 6인실에 입원해 계시면서 이쪽저쪽에서 뿌시럭거리는데
과연 엄마는 또 얼마나 불면증에 시달릴까 걱정이 되었다.
많은 병으로 하루에도 약을 6가지나 복용하시는 엄마는 사실 약중독 현상도 왔다. 부기로 얼굴은 달덩이가 되어가고 늘 얼굴이 푸석거렸다.
"목사님이 오셔서 안수기도 해주신 다음날 이상하게 얼굴에 부기가 빠진 것 같다. 다른때 보다 눈을 뜨는데 시원하게 잘 보여야."
배움없고 잘 몰라서 믿음이 굳건하지 못한 엄마는 처음으로 목사님 사모님 얼굴을 가깝게 보시고 무척이나 어려웠나 보다.
자식들은 다들 회사에 있고 엄마 혼자 계실때 두분이 오셨으니 그 순간 엄마가 얼마나 몸둘바를 모를만큼 어려웠는지 짐작이 간다.
엄마가 언제 퇴원을 하실지는 모른다. 연세 드시면 평소 나타나는 증상이라지만 그동안 엄마 삶을 뒤돌아보면 정말로 정신력으로 잘 버텨오신 것이다.
사무실이 엄마가 입원한 병원과 가깝기에 나는 짧은 시간일망정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찾아가서 안부를 묻고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어보며 말벗이 되어드린다.
"엄마, 민기 장가 가는 것까지 볼라면 건강해야제~"
"아이구, 민기 장가 갈때면 내 나이가 90살이 넘는다. 끔찍하다."
엄마가 나를 독한 딸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여동생은 마음이 여려 엄마에게 세심한 배려를 하는 반면
나는 친정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마냥 슬픔에 젖어 운다고 해결될 것이 없기에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온 새로운 방안을 찾아서 희망찬 미래를 그려야했다.
내가 독한 딸이 될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험난한 세상에 배움없는 엄마가 4남매를 키우시며
늘상 눈물로 신세한탄을 할때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는 병적으로 약한(나약한) 여자(엄마)가 제일 싫었다.
나는 기도한다. 우리 엄마를 진심으로 주께 부탁드린다고...
나는 기도한다. 사는 동안 덜 아프시고 많이 웃는 날이 되시라고...
나는 기도한다. 엄마한테 편하고 살가운 딸이 되기를...
나는 기도한다. 세상에 엄마가 계셔서 나는 행복한 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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