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는 햇살에 중천에 떠있을때 퇴근을 했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퇴근하면 몇시간이라도 더 부여받는 느낌이 들어 행복했다.
그러나 6시 땡~해서 똑같은 시간에 퇴근해도 요즘엔 어둠이 짙게 깔려 헤드라이트 먼저 켜게 되고 날씨도 추워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름에는 10분이면 도착할 집이 30분이 걸릴때도 있다. 시야가 어둡기에 또한 춥기에 운전자들이 둔해서 훨씬 많이 걸린다.
마트에 가서 먹거리라도 사게 되면 7시가 되어버린다. 먹거리만 사면 좋게~ 약국에서 파스도 사야하고 화장품가게에서
아들 로션도 사야할때는 원래도 빠른 걸음의 선수였던 내가 두꺼운 다리가 보이지 않게 바삐 내달린다.
"언제 오냐?"
7시가 되니 엄마는 전화를 한다. 아마 올케가 병원에서 가야할 시간이 되니 엄마는 교대자가 얼른 와서 눈에 보여야 되는데,
감감무소식이니 전화를 한 것이다. 퇴근하고 집앞에 주차하고 사가지 온 찬거리 식탁에 올려놓은 찰나 이 전화를 받으니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 7시 30분 쯤에 갈께~"
병원에서 나온 국은 거의 먹지 않아서 국이라도 끓일려면 나는 가스렌지 앞에서 엄마한테 가야하는 조바심 때문에
그나마 2%라도 있는 음식솜씨를 달아나버린다.
왜 기다리는 사람과 가는 사람의 시간셈은 이렇게 다르는지....서로 입장이 달라서 그런가.
"왜 안 와 ~"
하루에도 입원하고 퇴원하는 사람이 생기는 6인실 병실에는 어떤 사람이 입원하냐에 따라 그날의 병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요즘 내과병실이 부족한지 내과(진통제를 맞을 암환자 등)환자들이 엄마입원실에도 잠시 있다가 내과병실이 나오면 바로 가곤했다.
폐렴환자가 밤새 기침하는 소리, 환자들이 새벽에 화장실 가는 소리, 간호쌤들이 새벽에도 체크하고 돌아다니는 소리,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밤새 뒤척여서 간혹 5시 30분 내 알람소리를 못들을 때도 있다.
6시 20분......순간 핸드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늦었다. 얼른 엄마의 소변을 받아내고 나는 두다리가 보이지 않고
새벽을 뚫고 근린공원을 걸어서 우리집 엘리베이터를 막 타려는데...울황제가 왜 안 오냐고 전화를 한 것이다.
"다왔어!"
새벽은 대화도 단답형으로 하게 되나보다. 아주 정나미 떨어지게 사무적으로 주고 받은 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방에 불은 켜지고 큰 그릇에 아들과 아침밥을 먹으려고 비빔밥을 만들어 놓았다.
"밥 준비 해놓았구만, 왜 안오냐고 물어봐? 그냥 둘이 알아서 먹지..."
왜 내가 이런 말을 울황제한테 했는지, 늦게 일어나서 미안하고 뻘쭘해서 그랬나보다.
아니면 내가 안와도 둘이 이렇게 밥이라도 차려 먹으면 좀 좋겠는가, 꼭 올때까지 기다리지 말고...이런 솔직한 심정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내 말에 울황제가
"내가 너랑 1박2일 사냐? 전화를 한 것은 빨리 와서 아침밥을 차려주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시간에 집에 오는 사람이 연락도 없이 늦으니
혹시 새벽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돼서 전화를 한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되겠어!"
"그러면 전화할때 그 얘기를 다 하지. 나는 제 시간에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해석을 했지."
남자,
여자,
정말 다르다.
울황제는 왜 안 와,라는 말에 아내를 걱정하는 깊은 마음이 들어 있었고,
나는 왜 안 와,라는 말에 제 시간에 와서 밥을 차려줘야지,로 해석한 것이다.
오랜 시간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여도 나는 아직도 여자와 다른 남자에 대해서 모르는 것 태반이다.
여자는 자세하게 풀어서 얘기해줘야 잘 이해를 한다. 부연설명이 많으면 좋다.
울황제도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것은 나랑 같으니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가며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상대적으로 배우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사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훨씬 지혜로울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린 혼자 꿍~하지 않고 바로 대화로 풀어간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대화로 풀다보면 쉽게 이해가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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