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엄마간호일기 ⑧] 적응하지 못할 것이 뭣이 있으랴

순수산 2011. 11. 14. 15:46

 

 

 

서로 정이 들어 헤어지기 싫어서 702호 병실계를 만들자던 병실 이모 한명이 호전되어 퇴원하고

초등학생 수진이도 깁스를 하고 퇴원을 했다. 병실이 썰렁하다. 그동안 나의 잠을 설치게 한

코골이선수 할머니의 코고는 소리도 이제 익숙해졌다. 아니 코고는 소리가 예전보다 더 줄어든 것 같다.

보조침대에서 자느라 어깨가 결려서 침을 맞으니 좀 나아졌다. 이제 내 몸이 병간호 몸으로 체인지되었나보다.

 

수능이 어제 끝나고 오늘 새벽에 병실에서 집으로 가는데..비가 추적추적 참 외롭게도 내린다.

비가 오더니 제법 추워졌다. 목폴라를 꺼내 입었고 모자 달린 점퍼를 입었다. 입동이 지난지 3일째다.

3주만에 사랑하는 울 셀가족들과 어제 셀모임을 했다. 셀공과는 못했지만 예쁜 가족한테 맛난 밥한끼를 사줬다.

잃어버린 내 자식들을 챙기는 그런 마음이였다.

"언니~ 그동안 못봐서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언니가 없어서

많이 답답했어요. 병간호 하느라 얼굴이 핼쓱해졌구만요~"

엄마 병실에는 몇번 와서 얼굴은 봤으나 온전히 우리들만의 얘기는 오랜만이다. 매주 만나서 서로 교제했던 가족인데

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훈련 받고 은혜 받았던 것, 숙제에 관한 것, 회사에서 있었던 일 등 모처럼 나를 만나니

엄마한테 일러받치는 자식들마냥 쫑알쫑알 얘기들이 많다. ㅎㅎ

엄마를 간호해야 하니 식사만 하고 또 빨리 병실로 돌아왔다. 짧은시간에 우리 셋은 참 많은 대화를 했다.

 

그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새로운 할머니 환자가 우리병실로 들어왔다. 우린 불끈 상태에서 자고 있었기에 어렴풋이 소리만 들렸다.

코고는 소리, 숨소리만 겨우 들리는 조용한 시간에 입원하는 절차 속에 어찌나 큰소리들이 오고가는지 뭔 큰일이 난줄 알았으나

나는 피곤해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누워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병실 안에 찌린내가 진동하는 것이다. 찌린내와 악취가 심해 코를 막을 정도였다.

어제 밤에 들어온 환자한테서 나는 냄새였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사람....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보호자라고 따라온 아들은 몸이 불편하고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고 이 사람한테도 좋지 않는 냄새가 진동했다.

 

어째야 하리......이 난국을 어찌 헤쳐가리...

코고는 소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이제 냄새로 나를 훈련시키시나 보다.

처음으로 1인실로 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괜히 남아있는 환자이모들한테 배신을 때리는 것 같고....

그 새로운 할머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비위 약한 울엄마와 문쪽으로 가신 코골이선수 할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신다.

 

출근하려고 아침에 병실에서 나오면서 간호쌤한테 얘기를 했다.

"새로 들어온 할머니한테 냄새가 심해서 다른 환자들이 무척 힘들어 합니다. 딸이 셋이나 있다고 하던데,

딸들 오면 제발 샤워실에서 몸을 좀 씻겨주라고 얘기해주세요~"

노숙자마냥 엄마를 방치하다시피한 그 딸들이 엄마를 간호하러 올지 의문이지만 한동안 우리는 역한 냄새로 힘들것 같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는데...적응하지 못할 것이 뭣이 있겠는가.

어릴적 푸세식 화장실에 막 들어갔을때는 냄새가 심해 코를 틀어막고 들어갔으나 

어느 정도 일을 보고 있으면 그 독한 냄새도 그냥 맡을만 했지 않는가.

 

나는 환자이모들보다 더 소리에도 예민하고 냄새에도 예민해서 총체적 난국을 앞으로 어찌 헤쳐나가야 할지....모르겠다.

비위가 약하게 태어나게 한 울엄마한테 모든 책임이 있다. 내 책임은 하나도 없다. ㅎㅎ

팔목이 가늘어 팔힘이 없는 것도, 먹는 것 즐겨하지 않는 것도, 한번도 특별하게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것도, 다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 

이런 것은 아빠를 닮았어야 하는데...ㅋㅋ 아빠를 닮았으면 내 코는 오똑하게 참 멋졌을텐데....아쉽다.

 

2011.11.11

(오전 11시에 쓰지는 않았지만...[1]이 6개가 있는 이런 날은 좀 특별한 날이다. 이날 태어난 남자아이의 주민번호는 1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