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사진]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시인의 말이 각인되어서인지
연탄은 그냥 연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제 한 몸 뜨겁게 불살라 따뜻함과 이로움을 주고 사라지는
그러나 그 몸이 죽어서도 미끄러운 빙판길에 뿌려져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명을 다하며 사는 연탄.
어릴적 연탄불과 쌓은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엄마가 연탄을 새것으로 갈고 나면 불이 채 가시지 않는 연탄은 우리들 차지가 된다.
불이 곧 가시기 전에 연탄 불에 떡살을 올려서 노르스름하게 구워서 먹고
국자에 설탕을 넣고 젓다가 소다를 약간 넣어서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달고나도 되고
한겨울 간식거리가 없을때 떡을 꺼내 연탄불에 구워먹고
빨아놓은 신래화를 연탄 아궁이 옆에 말리면 참 꼬들꼬들하게 말려졌다.
지금처럼 추운(오늘의 추위는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게 따뜻하지만) 그시절 겨울에는
쌀독에 쌀 가득차고, 창고에 연탄 몇백장 들여놓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되었다.
요즘과 비교되지 않는 그때는 참 소박한 삶이여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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