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야생화의 에피파니(Epiphany) ![]() |
2013-04-03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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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저 책 속에 향기로운 책을 품고 있는 꽤 읽을만한 괜찮은 책이다. |
올해도 변함없이 아파트 정원에 노란 산수유가 몇 그루 피었다. 이 꽃은 구례 산수유 마을의 군락지를 구경해야 제 맛이다. 정원의 산수유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매화와 함께 요즘 나의 출근길을 마중해주는 꽃이다. 김민철님의 [문학 속에 핀 꽃들]책을 20 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이 내가 흔히 알고 있는 붉은 동백꽃이 아닌 생강나무이고 내가 산수유라고 알고 있던 나무도 생강나무란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다른 나무인 것이다. 지금껏 알고 있던 정보가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 책 뭐지?
에피파니(Epiphany)는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진실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 즉 새로운 진실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야생화에 무지였던 내가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읽고 난 후 야생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행 중에 만난 이름 모를 풀이였던 여뀌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분명 그 이후부터 여뀌도 많은 산행인들 중에서 나를 알아봤으리라.
사람들 기억에 남을 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 책의 저자는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오랜기간 활동하면서 문학담당 기자를 꿈꿀만큼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 속에 핀 꽃들> 책은 33편의 한국문학 작품이 나오고 100여 점의 야생화가 나온다. 어느 누구도 접하지 못한 시도라 무척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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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엉기게 하는 효과를 주는 엉겅퀴,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과 흡사한 ‘괭이밥’은 고양이(괭이)가 좋아하는 먹이라고 해서 이름을 가졌고, 양지바른 뜰이나 둑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달맞이꽃은 키가 크고, 괭이밥은 키가 작다. 야생화는 꽃과 이름만 외워서는 기억에 오래가지 못한다. 야생화에 이야기가 엮었을 때 그 기억은 스토리가 되어 오래간다. 소설 [은교]에서 왜 쇠별꽃이 나오는지 알 것 같다. 쌀알만큼 작은 흰꽃에 온통 초록 잎과 줄기 뿐이라 앙증맞고 싱그럽게 느껴진다. 야생화만 소개했다면 이렇게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깊은 여운이 남지 않을 것이다. 소설 작품 속에 얽힌 야생화라 등장인물처럼 그 야생화도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기에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소개한 소설을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다. 작가가 왜 이 대목에서 이런 야생화를 출현시켰는지, 그 의도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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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친절하게 야생화 사진을 설명하되, 이와 비슷하게 생겨 자꾸 혼동되는 야생화를 비교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을 읽으면 야생화 박사 중급반은 되어 유식하다는 말을 듣겠다.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을 아직도 구별하기 힘들다면, 결정적인 Tip 하나를 주겠다. 산수유꽃의 나무줄기는 너덜너덜 지져분한데, 생강나무 줄기는 미끈하게 빠졌다. 꽃의 이름을 보면 그 꽃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얼핏 알수 있다. 나팔꽃 잎은 심장 모양, 나팔꽃과 닮은 메꽃은 창 모양을 하고 있다. 비슷한 야생화를 놓고 다른 그림 찾기 놀이처럼 내게는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조상들의 해학이 넘치는 꽃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사위질빵 야생화를 보면서 어쩜 이런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지 그 이름이 나오기까지의 사연이 한편의 소설이다.
능소화가 ‘기생꽃’이라는 별칭도 가진 것을 보면 사람들이 보는 느낌은 비슷한 모양이다. 기생꽃이라는 이름은 능소화가 늘 화려한 자태로 요염함을 자랑하며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일 것이다.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시들지 않고 싱싱한 상태에서 송이째 뚝뚝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p214>
세상에 동물과 식물이 있다면 절반 이상은 식물이다. 풀꽃 이름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세상이 환해졌다고 말하면 좀 과장일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풀꽃 이름을 알면서 지나가는 것과 모르면서 지나가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풀꽃 공부는 괜찮은 취미인 것 같다.<p226>
소설 속의 야생화 얘기뿐 아니라 소설을 읽었던 작가의 견해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읽었을때의 느낌과 이 작가의 느낌을 견줘서 보는 재미도 크다. 야생화로 다시 들여다 본 이 책은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책을 다시 손에 들게 한다.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 책에서 장미가 어떤 의도가 내포되었는지 알 것 같다. 다시 한번 재해석의 시간을 갖고 싶다. 최명희 님의 <혼불>에서는 기구한 여성의 날개를 뜻하는 여뀌를, 정유정 님의 <7년의 밤>에서는 파괴된 곳의 불길함을 의미하는 가시박이 나오고, 최근에 읽은 박범신의 <은교>에서는 소녀의 싱그러운 향기를 뜻하는 쇠별꽃을 보여준다. 황선미 님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바람에 후두득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과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도 이 책에서 소개한 33편 작품 중에서 몇 편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향기로운 책을 품고 있는 꽤 읽을만한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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