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17개, 국립공원등산

[무등산] 옛길, 서석대, 장불재 10km 5시간 산행

순수산 2017. 3. 17. 15:58

 

[무등산 정상 서석대 1100m]

 

 

 

한달에 한번씩 산행계획을 세울 때 봄처녀마냥 가슴이 설렌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이 되니 산행갈 마음에 부산스럽다. 3월, 이달에는 빛고을의 자랑인 국립공원 무등산에 갔다. 집에서 30분 정도 달려 원효사에 도착했다. 원효사에서 출발하여 서석대 정상까지 4.1km라 2시간 정도 걸린다. 무등산 옛길 2구간 코스를 선택했다.

 

옛길 출발점 표지석에서 남편은 인증샷을 찍었다. 올해 1월 2일에 남편과 아들은 이 코스로 서석대까지 갔었다. 산 좋아하는 내가 함께 동행하지 못한 것은 출근했기 때문이다. 나를 놔두고 두 남자가 산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으리라. 사나이들의 대화속에 군대이야기는 필수로 끼여 있었겠지.

 

청량한 새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옛길을 걸어가는데 몇 년전에 제자훈련 동기들과 함께 했던 과거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생각난다. 쉼터에서 무슨 간식을 먹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산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면서 그리고 사진을 찍어주면서 그 영상들이 내 기억의 한자리를 턱하니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남편과 함께 이 길을 걸었을때의 땀나는 뜨거운 추억도 훅 스쳐 지나간다. 인생은 결국 추억 까먹기인 것 같다. 얼마나 까먹을 추억이 많으냐에 따라 삶의 풍성함이 달라질 것이고 그 풍성의 재료는 슬픔보다는 즐거움이 주로 차지한다.

 

봄은 봄인데, 산은 겨울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여전히 눈이 남아 있고 꽁꽁 언땅은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서 질퍽거린다. 진흙이 설피(눈이 많은 고장에 주민들이 겨울철에 신바닥에 덧대어 신는 물건)처럼 등산화에 붙어서 발걸음에 무겁게 만든다. “간식을 물, 커피, 사과, 달랑 초코파이 2개 이것밖에 안 싸왔어?” 허기진 남편이 볼멘소리를 한다. “산행의 고수들은 가방을 가볍게 싸는 거야.”라고 되받아쳤지만 안쓰러운 남편에게 내 몫의 초코파이 반을 눈물을 머금고 나눠줬다. 산에서 먹는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고된 산행이 버물러진 맛이다.

 

산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행은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아있다. 산행 초입에는 발걸음 가볍게 오르다가 힘든 오르막에서는 숨이 가빠온다. 잠시 쉼터에 앉아 땀을 닦고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또다시 길을 나서는데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산행길에 무릎도 아프고 기름칠을 해야할 듯 퍽퍽하다. 힘들어서 대화도 줄어든다. 쉼터가 나오면 어디든 퍼질러 앉고 싶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때쯤에 시야가 툭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산에 오르는 자만이 느끼는 값진 보상이다. 지금껏 걸어온 내 발자취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나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젖먹는 힘까지 써서 대망의 정상에 오르면 황홀한 성취감에 도취된다. 정상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하지만 정상이 주는 짜릿한 맛이 분명 있다. 그 맛에 높은 곳을 향해 오르게 되나보다. 아무리 힘든 산행일지언정 마음 맞는 사람과 동행한다면 그 길은 고행길이 아니라 즐거운 여행길이 된다.

 

푸른 창공에 독수리 한 마리 비상한다. 하늘을 날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저 독수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언젠가 내 생애 헹글라이딩을 타볼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좁은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비상이다. 바람에 온몸을 맡기니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내 의지가 아니라 바람이 데려가는 곳으로 손잡고 사이좋게 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조바심이 든다. “앉았다 일어나면 무릎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데 언제까지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산행을 할 수 있으니, 나보다 한참 연상인 남편에게 몸관리 잘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아직까지는 나와 산행을 동행하겠다는 동성 친구가 없다. 주변에는 가벼운 산책에도 버거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것이 무척 아쉽다. 산행을 즐기는 부부 한쌍을 아무리 물색해봐도 주변에는 없다. 남편과 둘만 하는 산행은 이제 밋밋하다.

 

멋지게 나오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넓은 바위에 누워서 하늘도 봤다. 여유, 행복, 성취, 힐링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산할때는 장불재로 향했다. 먼지 흩날리는 평평한 군용도로를 내려오다 보면 빙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봄날에 빙벽을 만나니 별미다. 이런 봄날씨에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버텨준 빙벽이 고맙다. 장관을 이룬 모습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겨울 중에 겨울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사계절을 동시에 만난 것 같다. 왕복 10km, 5시간을 걸었다. 한정식당에 들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달콤함과 포만감이 나른함을 불러온다. 3월 둘째주 주말, 귀가하는 길에 행복과 추억은 잊지 않고 챙겨왔다.

 

 

[무등산 옛길 2구간 코스로 산행시작]

 

 

[옛길 시작]

 

 

 

[눈이 녹지 않는 구간도 있고, 녹아서 질퍽거리는 구간도 있다]

 

 

 

 

 

[무등산 옛길 종점]

 

 

 

 

[바위에 눕다]

 

[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니 독수리 한마리 훨훨]

 

 

[독수리의 비상]

 

[무등산 정상 서석대 1100m]

 

 

 

 

[이곳, 서석대 전망대에서 지인을 만났다]

 

[장불재로 내려가는 길]

 

 

 

 

 

 

 

 

 

 

 

 

[군용도로변의 빙벽]

 

 

[2017.01.02  빙벽에서: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