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17개, 국립공원등산

[17-10] 가야산, 안개와 천둥과 폭우를 만났다

순수산 2016. 8. 6. 14:02


[상왕봉 우두봉 정상에서]




경남 합천에 위치한 국립공원 가야산(1,433m)에 다녀왔다. 전국 16개의 국립공원 산을 전부 다녀오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중의 하나이다. 가야산은 열 번째로 등반한 산이다. 앞으로 설악산, 북한산, 치악산, 오대산, 속리산, 월악산이 남았다. 가보지 못한 산이 나를 받아줄지 모르지만 가게 된다면 또 어떤 추억을 쌓을지 기대가 된다.


새벽 5시에 기상했다. 폭염주의로 연일 날씨가 덥기에 햇볕을 피해 빨리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라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새벽이 주는 선물이다. 휴가철인데 교통체증도 없다. 탁 틔인 도로를 질주하니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나왔다. 본격적인 여름휴가 첫날, 우리부부는 바다가 아닌 산으로 떠난다. 떠오르는 태양을 달리는 도로 위에서 맞이한다.


거창 휴게소에 들려 아침식사를 간단히 했다. 우렁된장찌개는 된장의 깊은 맛이 없다. 콩나물국밥은 간이 안되어서 심심했다. 맛깔스런 음식맛에 길들여진 전라도 사람들이 타지역을 가게되면 가장 힘든 것이 맛없는 음식이다. 내맛도 네맛도 나지 않는 음식맛에 늘 실망한다. 그럴때에는 특히 휴게소에서는 라면을 주문해서 먹으면 좋다. 봉지라면을 뜯어서 요리하니 특별한 비법없이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가야산, 오늘의 등산코스는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서성대를 지나 칠불봉(1433m)에서 상왕봉인 우두봉(1430m)까지 올라가서 만물상으로 내려오는 거다. 만물상 반대코스로 시작하여 서성재로 오르니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고산이라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시야를 간간히 가린다. 잠깐 한눈을 팔면 안개가 걷히고 빼꼼하게 얼굴을 보여준 후 수줍어하듯 다시 산세가 사라져버린다.


“뱀이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남편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를 쳤다. 바로 뒤에 따르던 나는 걸음을 멈춘후 어떤 뱀인지 확인을 했다. 바위색과 깔맞춤을 한 보호색의 뱀이 스르륵 벽을 타고 지나간다. 대략 30센치미터쯤 되는 뱀이다. 계곡을 따라 걷는 습한 산이기에 충분히 뱀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뱀을 조심하라는 현수막은 없었다.


가야산을 오르는 동안 등산객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고산이기도 하지만 웬만한 산행 매니아가 아니라면 여름산행은 피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더위로 힘들기 때문이다. 칠불봉까지 오르는데 여자는 나혼자뿐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며 남편이 나를 향해 엄지를 척하니 올려준다. 아름다운 산세를 구경하며 사진도 많이 찍고 싶은데 우리랑 숨바꼭질을 하는 듯 안개가 산세를 가렸다보여줬다,하며 장난을 친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계단을 오르고내리며 최고봉인 칠불봉에 올랐다. 철계단의 경사는 어찌 그렇게 급한지 잘못하다가는 떨어질 것 같다. 날씨는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지려고 먹구름이 낀다. 습하기는 또 얼마나 습한지 몸에서 불이 난다. 다행히 가야산 상왕봉인 우두봉까지 잘 도착하여 인증사진을 찍었다.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한두방울씩 떨어지다가 곧 멈추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비도 챙기지 않았는데 곤란했다. 우리가 1433미터의 고산을 너무 쉽게 생각했을까. 날씨가 알루미늄 냄비 끓듯이 너무도 변덕스럽다. 굵은 빗방울이 거세게 내리더니 급기야 “꾸르르 꽝” 천둥이 친다. 가야산이 두조각으로 갈라진 줄 알았다. 깜짝 놀라서 주저 앉았다. 없는 애도 떨어질 판이다. 산에서 듣는 천둥소리는 도시에서와는 사뭇 달랐다. 우렁찬 소리가 그대로 내 가슴을 내리쳤다. 그러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온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볼거리가 많다는 만물상의 멋진 산세는 폭우로 본체만체, 급하게 하산하게 만들어 아쉽다.


초등학교 다닐 때 폭우가 내린 날 신이 나서 동네를 돌아다닌 기억이 있었다. 이미 젖은 몸이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오롯이 맞으면서 시원함을 즐겼다.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비는 피할 길이 없고 그냥 그 비를 맞고 조심조심 하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폭우가 가야산의 추억거리를 강렬하게 만들어주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등산화에 비가 들어차 걷는데 발이 무거운 것이 흠이었다. 

 

무더위에 국지성 호우라지만 우비도 없이 3키로를 쫄딱 맞고 하산했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프다. 계단을 내려가려면 자연스럽게 꽃게걸음으로 걷는다. “그렇게 내려올 산을 뭣하러 힘들게 올라가세요?” 산행 후유증으로 힘겹게 걸어다니는 나를 보며 지인이 물었다. “글쎄, 산이 거기 있으니 올라가지요.” 그 산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올라가지 않겠지만 내려온다는 것을 알기에 올라가는 것이다. 다들 힘들다고 말하는 산행을 나는 계속 할 것이다.


다음날 해인사 소리길 산책이 있기에 성주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요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시끄러운 경북 성주에 위치한 숯가마찜질방에서 고단한 산행의 여정을 풀었다. 찜질방과 함께 영업하는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후 숯가마찜질방에 가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소화시킨 우리가 참으로 대단하게 생각되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저녁식사로 삼겹살과 콩물국수를 주문했다. 국수가 심심하다. 그래서 설탕과 소금을 좀 달라고 해서 쳐서 먹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손 한뼘이나 되는 지네가 남편 스마트폰으로 기어간다. “지네다!!!” 오늘 하루 끝까지 놀라게 한다. 지네가 물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던데 다행히 빠르게 피해서 물리지는 않았다. 감사하다. 찜질방 야외 평상에 누워서 더위를 식히며 밤하늘을 쳐다봤다. 산골의 한적하고 고요함이 좋다. 남편과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그 상황들이 내게 행복을 안겨준다. 


 가야산, 폭우 속에 만물상을 온전히 구경하지 못해 앞으로 한번 더 가야할 산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니다. 가야산에서 뱀과 지네를 만났고, 안개와 천둥과 폭우를 만난 다사다난했던 산행이었다. 그래도 산행이 좋은 걸 어떡하니. 비록 걸을 때마다 허벅지의 고통이 이마의 주름살을 만들지라도 이 고통은 즐거움에 속한다. 다음 산행은 속리산이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새벽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앞으로 등산해야 할 국립공원을 체크하며]


[순식간에 안개가 덮친다]



[안개가 걷히면 산세의 아름다움이 얼굴을 빼꼼히 내민다]




[나보다 더 사진을 많이 찍는 남편]



[마의 철계단]




[주목]








[철계단의 급경사]




[한계단 더 올라가면 하늘로 연결되려나]






[최고봉 칠불봉에서]



[폭우로 전부 젖었는데도 즐겁다]



[해냈다. 승리의 브이]




[폭우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연인]


[물에 빠진 생쥐꼴, 그러나 오랜만에 흠뻑 젖어 신났다.]



[하산길, 유격훈련/ 나는 완전 군대체질]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오늘하루 수고했다]



[찜질 뜨거운 소금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