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서석대 정상]
12월 마지막 주말에 “오늘 무엇을 할까”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무등산에 가자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산에 가자는 말이다. 해년마다 새해 첫날이면 무등산에 올랐다. 해맞이 하러 가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려서 올해는 미리 다녀오자고 했다. 동감이다. 이래서 부부인가 보다. 시끄러운 산보다는 조용한 산을 우리는 원한다.
일년에 서너번 오르는 무등산은 주로 옛길 코스로 올라 서석대까지 갔다. 오늘은 일반인들이 주로 오르는 코스로 잡았다. 증심사에서 출발해 중머리재,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까지 왕복 12km 거리이며, 5시간 30분의 산행이다. 한겨울의 산행은 삭막한 느낌이 드는데 그 나름대로 풍경이 있다. 거추장스러운 잎을 다 떨구었기에 나무 몸피는 작아져 있다. 나무 본연의 모습이 깡그리 드러난다. 인생의 겨울도 이 나무와 별다르지 않겠지. 산속이 수선스럽지 않기에 생각을 갈무리하게 한다.
날씨가 제법 흐리다. 이럴때일수록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야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 날씨가 춥기에 모자와 장갑, 마스크는 필수다. 등산할때는 모자를 쓴 머릿속이 스팀이 올라와 덥다고 느끼지만 잠시 휴식을 취할때나 정상에서는 모자가 없으면 강한 추위로 위험할수도 있다. 산에 오르면 생각을 많이 한다. 비록 동행이 있는 등산일지라도 막상 오르게 되면 내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오랜만에 나와 나누는 진짜 대화가 된다.
2017년 하루를 남겨두고 한해를 돌아보니 스틸 컷처럼 장면들이 스친다. 일본 기타큐슈여행과 베트남 다낭여행을 다녀왔고, 아들은 필리핀 선교를 다녀왔다. 북한산, 속리산, 치악산, 무등산까지 국립공원 산을 안전하게 다녀왔다. 씨를 뿌려 배추가 되어서 김장김치를 처음 담아봤다. 올 한해 동안 45권의 책을 읽었고 매달 발간하는 가족신문이 12월 이번달이 186호가 되었다. 수필창작 강의를 다니며 글쓰기 공부를 했고 건강을 위해 수영을 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내 좌우명은 ‘기록한 날만 살아있다’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세월이 흐르면 과연 그런 날이 내 생애 있기는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가 사라진다. 사무실 책상에 탁상달력 기록을 비롯하여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손수첩과 카카오스토리, 블러그까지 쉼없이 기록을 한다. 그 기록들은 한달에 한번 발간하는 가족신문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건설회사에서 21년째 근무하다 보니 훈장처럼 자격증이 3개 생겼다. 전기경력수첩 초급자격증과 소방경력수첩 고급자격증과 이달에 통신경력수첩 초급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이력서에 한줄을 더 기록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2017년 한해를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직장 다니며 입원 중인 엄마 간호도 하고, 여러모임의 회장과 총무를 맡으면서 교회 셀리더, 권사, 고등부교사로 시간을 알뜰살뜰 사용하면서 계획한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내 손수첩에 얼마나 메모를 많이 하고 들여다봤던지 너덜너덜할 정도다.
아마 산행하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장 서서 걸어가고 있는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 가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날들을 위로한다. 견디고 참고 살아왔던 날들을 위무한다. 이런 맛을 느끼지 못하기에 친구는 날씨도 춥고 어차피 내려올 산을 뭣하러 힘들게 올라가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럼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산에 오르면 심장이 터질 듯이 힘들고 다리도 아프고 지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생각과 영은 맑아진다. 여유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잠시 벗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뒤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산행을 통해 만나게 된다. 산행은 육체적인 힘듦이 있기에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 휴식도 달게 느껴진다. 산행을 하고 먹는 조촐한 식사는 산해진미가 따로없다. 하산 후 피로를 풀고자 온천을 하면 몸과 마음을 닦은 듯 개운하다. 등산이 주는 좋은 점은 수없이 많고 느꼈기에 비록 힘든 산행으로 꽃게걸음을 걷더라도 또다시 산행을 떠나게 된다.
작은 행복을 삶속에서 많이 느끼고 그 행복을 확장하며 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무등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면서 등산코스를 하나씩 거치고 인증사진을 남기면서 목표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나를 기분좋게 만든다. 막바지 힘을 다해서 오른 서석대 정상.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환호가 나왔다. 가지마다 하얗게 눈꽃이 피어 있다. 눈이 내린지 꽤 되었는데 눈꽃이 지지 않고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다. 눈꽃에게 전한다. 반갑고 고맙다. 이런 맛에 산에 오른다. 정상에 발을 디딘 자만이 만나게 되는 멋진 풍광과 가슴 벅참과 행복 누림이 있기에 나를 산에 오르게 한다. 하산 후 1인분에 7천원하는 보리밥 뷔페를 먹는데 이 행복을 어떻게 설명하리오.
지인들에게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니?”라고 물어보면 의외로 쉽게 대답을 못한다. 그만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 일수도 있다. 나는 등산할 때, 독서할 때, 묵상할 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당산나무]
[입석대]
[서석대 정상에 누워본다]
[7천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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