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17개, 국립공원등산

[17-14] 월악산, 수묵담채화 한점에 스며들다

순수산 2018. 5. 24. 12:57

 

[월악산 정상에서]

 

월악산(月岳山)은 충주호에서 올라오는 운무로 장관을 이루는 산이다. 동양의 알프스라고 부르며 충북 제천에 소재하고 있다. 1984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고지가 1,094m이다.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고 해서 ‘월악’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월악산은 설악산, 치악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산에 속한다.

 

천고지가 넘는 산을 갈 때는 마음부터 단단히 먹어야 한다. 네비게이션을 검색해보니 집에서 월악산까지는 287km의 거리이다. 운전해서 가는 시간만 3시간 30분이다. 당일코스로 다녀와야 했기에 사전계획부터 철저히 짰다. 첫째, 새벽 5시에 기상해서 5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다. 둘째, 아침식사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는다. 셋째 왕복 산행으로 6시간을 잡는다. 넷째, 저녁 7시 안에 귀가할 수 있도록 해찰하지 않기 계획을 세우면서 산행에 최적화된 부부라며 남편과 둘이 웃었다.

 

정상인 영봉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난이도 상에 속한 동창교(월악산 휴게소)에서 송계삼거리를 지나 영봉까지 왕복 8.6km, 산행시간만 해도 왕복 6시간이 걸린다. 아침 9시, 산에 오르는데 충주호에서 올라오는 운무가 우리를 따라 월악산으로 올라간다. 남편은 바람타고 올라오는 운무보다 우리가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나를 팽개치고 혼자 바삐 걷는다. 발아래 깔린 운무의 멋진 모습을 봐야 한다며 오르기도 힘든 악산을 어서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한다.

 

휴식의 시간을 보내야 할 휴일에 나는 근무할때보다 더 힘든 고행을 하고 있다. 편히 쉬어야 할 시간에 먼 곳까지 가서 땀으로 세수를 하고 있다. 천근같은 발을 한걸음씩 고지를 향해 옮기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허걱대며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이 따라오는데 이것을 감내하며 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에게 묻게 된다. 빨리 올라 오라는 남편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등산 중독이 아닐까. 이런 악산을 다녀오면 일주일 동안 다리가 아파서 걷기도 힘들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 무척 애를 먹는다. 그 높은 산을 다시 내려갈텐데 죽기살기로 꾸역꾸역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산이 좋다. 좋은데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좋다. 오르는 고통보다 정상에서 맛보게 되는 값진 풍경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고통을 참고 산에 올라가면 정상에서는 잠깐 머물겠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산 허리쯤 올라가는데 운무와 숨바꼭질을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시야가 흐릿하더니 운무 속에 우리가 갇힌다. 빼어난 수묵담채화 속에 자연의 일부가 된 우리부부가 스며든다. 자연이 우리를 너그럽게 포옹해준다. 그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산행이 힘들어서 “악~”, “어~” 저절로 신음이 나왔지만 금방 “와아~”하며 신비한 산의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정상 영봉에 오르자 산객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선생님이 중학교 2학년들 10여명을 데리고 와서 좁은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2생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도 대단하지만 끙끙대며 올라왔을 학생들도 대단하다. 지금 이 순간 월악산 정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은 인간 승리자다. 우린 하산할 때 학생들과 함께 내려왔는데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졌을 것이다,며 학생들의 대견한 모습을 격려해줬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등산보다 하산이 훨씬 힘들다. 악산은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의 철계단을 내려올때는 순간 산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 많은 계단을 어찌 다 내려갈까, 하산할 일이 까마득하다. 꽃게걸음과 뒷걸음질을 번갈아가며 내려가자니 속도가 붙지 않는다.

 

“산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앞장 서서 내려가는 남편이 고개를 돌려 대뜸 내게 묻는다. 한두번 물어본 것도 아닌데 남편은 처음 물어본 것처럼 진지하게 물었다. “그야 하산하는 사람이죠.”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단번에 맞추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 욕심도 소박해진다. 어서 하산해서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잠을 자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적극적인 젊은 아내와 살고 있는 남편이 때론 피곤할 것이다. 나의 진취적인 모습에 반해서 결혼을 결심한 남편이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의 산행 계획에 두말없이 동행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남지만 남편과 둘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큰 마음 먹고 떠난 월악산행, 다치지 않고 계획대로 귀가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운무와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었음에 또한 감사하다.

 

 

 

[산행 입구에서 한컷]

 

 

 

 

 

[운무가 계속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오늘의 등산코스는 동창교-영봉]

 

[계곡의 물소리가 어찌 이리 청명한지]

 

 

[이렇게 힘든 산행을 왜 하는지??? 땀으로 세수하고]

 

 

[땀과 습한 날씨로 안경을 써도 흐릿]

 

 

 

 

[계속 오르는 운무를 장풍으로 막아보고]

 

[자기야~  나 보여???]

 

 

[응.   보여!]

 

[파노라마를 세로로 찍고]

 

 

 

 

[땀에 절인 내모습]

 

 

 

[멋지다]

 

 

 

[마의 철계단을 오르고 또 내리고]

 

[월악산 정상에서]

 

 

 

[하산의 길은 가볍다. 활짝 웃는 내모습]

 

 

 

 

 

 

 

 

 

 

 

[월악산 산행에서 만난 야생화]

 

201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