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여행,일상을 벗다

[고흥] 거금도 둘레길, 거금대교 자전거, 녹동 장어거리를 여행하다

순수산 2019. 8. 30. 10:09

 

 

[연소 해수욕장]

 

 

 

고흥 거금도 둘레길로 나선다. 둘레길 중 제 2구간인 솔갯내음 길을 걷는 다음 바다스파랜드에서 씻고 녹동 장어의 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로 한 일정이다. 남편과 둘이 떠나는 여행인데 상황이 된다면 거금대교에서 자전거를 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거금도는 한반도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며 해양경관이 아름다워 소(小) 제주도라고 부른다. 거금도 둘레길의 총 길이는 해안선을 따라 42.2km가 된다. 제 7구간은 레슬러 김일 선수의 고향으로 알려져서 “레슬러의 길”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거금대교는 국내 최초로 복층교량이다. 상층부는 차량용이고 하층부는 보행자용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탈수 있다.

 

광주에서 거금도까지는 140km가 된다. 왕복 4시간을 운전해야 하기에 피곤할 수도 있는데, 남편은 카레이서마냥 스피드를 즐긴다. 산행이 아닌 둘레길이라 가벼운 복장을 하고 나섰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2구간 초입부터 무성하게 자란 풀이 길을 덮어버렸다. 남편은 긴 막대기로 풀을 헤치며 쿵쾅 쿵쾅 발소리를 내면서 길을 만들며 올라간다. 험난한 둘레길을 계속 가야할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장소로 가야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우린 계속 가보기로 했다.

 

태양은 뜨겁고 둘레길을 걷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우리는 오지 탐험가야.”라고 남편이 말했다. 인적 없는 곳에서는 서로에게 단단하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정비되지 않은 둘레길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산행을 하다보면 순탄치 않은 길을 종종 걸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오늘처럼 우리는 길을 만들어 걷는다. 난관의 길을 걸으면서 남편은 40년도 넘은 초등학교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남인 남편이 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다. 뒷산에 방목 중인 소가 잘 있는지 아버지와 흩어져서 확인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혼자 걸으면서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운무로 시야가 가린 것도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버지랑 떨어져서 걷고 있기에 누가 먼저 소를 발견하면 큰소리로 상대에게 알려줘야 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소몰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를 먹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린 나이에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성한 풀로 가려진 길을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난감하다. 사람들은 이 길을 언제쯤에 걸었을까. 둘이 걸어가면서도 약간 두렵다. 가다 보면 길다운 길이 나오겠지. 그리고 해수욕장도 보인다고 했으니 기대하며 걸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한참 걷는데 바다에 있어야 할 게가 일탈을 꿈꾸며 일광욕을 하는지 산책길에 생뚱맞게 나와 있다.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고진감래라는 말을 오랜만에 써본다. 드디어 연소 해수욕장이 보인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정자도 있다. 일단 해수욕장으로 내려가서 신발을 벗고 걸었다. 시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뜨끈 미지근한 물이 발을 감싼다. 밀려드는 파도를 줄넘기처럼 생각하고 피하기 위해 뛰어넘는다. 어린아이마냥 첨벙첨벙 물과 놀고 있으니 남편이 사진을 찍어준다. 둘레길에 해수욕장을 만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구간의 둘레길을 끝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우리는 연소 해수욕장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길이 아닌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동행자와 더 가까워지는 관계를 만들어 준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면 우리는 더 애틋한 사이가 된다. 우주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에서 파자마 바지와 러닝셔츠만 입고 있는 남편과 여행지에서 보는 남편은 실로 다른 모습이다. 밖에서 보는 남편이 훨씬 멋지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낯선 풍경이 서로에게 대화의 문을 활짝 열게 하는 것 같다. 일상의 틀을 잠시 벗어나서 그 옛날 연애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연소 해수욕장에서 잘 쉬었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남편이 팔에 낀 토시를 벗어줘서 내 발토시로 사용했다. 풀로부터 훨씬 안전하다. 둘레길을 끝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한데, 과감히 포기한다. 더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거금대교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예전에는 자전거를 유료로 대여했는데, 지금은 신분증만 제출하면 무료로 대여를 해준다고 한다. 형편없는 둘레길로 고흥에 대한 실망이 컸는데, 무료대여라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자전거를 한대씩 빌려서 2,028m 다리를 씽씽 달렸다. 대교가 끝나는 지점에 약간 오르막길이 나왔는데, 허벅지가 터질만큼 페달을 빠르게 굴러서 올라갔다.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다.

 

일정대로 바다스파랜드에서 개운하게 몸을 씻었다. 해수라서 물이 미끌미끌해서 좋다. 장어의 거리로 가서 장어 구이를 먹었다. 장어를 구워 소스를 찍어서 깻잎 위에 놓고, 유자청과 구운 마늘을 넣어서 싸서 먹는데 달다. 입 안에서 유자향이 계속 맴돈다. 둘레길도 걷고, 해수욕장도 들어가고, 목욕도 해서 체력소모가 컸는지 평소보다 장어 구이가 훨씬 맛있다. 흐뭇한 얼굴로 맛있게 잘 먹는 남편을 보니, 내가 더 행복하다. 담백한 장어탕까지 배부르게 잘 먹고 산책을 하려고 근처 바다정원으로 걸어갔다. 배가 부르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여유가 생긴다.

 

앞으로 다가오는 날들이 오늘만 같아라. 영양가 풍부하게 고흥 투어를 잘 다녀왔다. 별로 닮은 것이 없는 남자와 여자가 25년 넘게 살다보니 서로 닮아간다. 다르기에 매력이 있고 좋아 하기에 또한 닮아간다. 다음에는 또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날까. 벌써 설레고 기대가 된다.

 

 

 

[둘레길 2구간 초입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걸어가기 힘들 정도이다]

 

 

 

 

[막대기로 정비되지 않은 산책길은 헤치며 가야 했다. 여기는 정비된 구간]

 

[무슨 버섯일까?]

 

 

 

 

[산책 길에 일광욕 중인 게를 만나다]

[해수욕장에서 공중부양]

 

 

[풀이 무섭다]

 

[풀을 헤치고 가야 해서 손토시가 발토시로 둔갑]

 

[밀려오는 파도를 뛰어 넘는다]

 

 

 

 

 

[거금대교에서 자전거를 정말로 재밌게 잘 탔다]

 

[예전에는 유료대여할때 탔는데, 지금은 무료대여다]

 

 

[녹동 장어거리에서]

 

[녹동 바다정원]

 

 

 

 

 

[고흥이라 유자청을 넣어서 장어구이와 함께 먹었더니 향긋하고 비리지 않았다]

 

[바다장어 부드럽고 고소하다]

 

201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