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첫눈이 오는 날 추위에 오그라드는 몸을 겨우 건사하고 퇴근할 무렵이었다. 첫눈을 맞이하려는 듯 아파트 단지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분주하게 모여 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고 있을 때.
“야, 나 눈 먹었다.”
“먹어보니까 맛있지?”
“응, 맛있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솜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혀 바닥을 내밀어 함박눈을 받아 먹고 있었다. 눈꽃 송이를 맞으며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얼굴 가득 웃음이 번졌다.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풍경이 정지된 것이다. 차디찬 눈이 아니라 눈이 맛있다는 것을 터득한 날이였다.
2년 전 광주에 폭설이 왔었다. 무려 눈이 40 센티미터가 쌓인 것이다. 그때 나는 눈도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교통이 마비되고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그저 녹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초등학생 아들은 제 생애에서 가장 신나는 날을 맞이한 듯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눈을 치운다고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계단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이 족히 걸어다닐 수 있도록 비질을 해 나갔다. 점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때까지 그 추위에 이마에 땀까지 맺혔다. 아파트 뒤편 주차장까지 쓸면서 근린공원에 이르게 되자 녀석은 빗자루를 내팽개치고 냅다 눈위로 들어눕는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눈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다.
“추워!”
소리를 쳐보지만 녀석은 눈꽃나라에 도착한 듯
“엄마도 누워봐, 얼마나 재미있는데.”
보는 것도 추운데 어떻게 누울 수가 있어. 아니 옷이 젖어 버릴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녀석이 하는 대로 쳐다볼 뿐이다. 녀석은 장난감 같은 눈을 어떻게 매만져 보나 신기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뒤집어 눕더니 물속에서 수영하듯 두 팔로 휘젓고 간다.
“엄마 수영도 된다.”
눈가루를 날리더니 녀석의 얼굴에 행복이라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던 추억이 묻어난다.
“엄마 눈 안 왔어요?”
겨울에 접어들면 첫눈이 오기까지 아들의 특별한 아침 인사법이다. 내일은 첫눈이 꼭 오게 해달라며 항상 잠들기 전에 기도하는 아들이다. 불현듯 정말로 첫눈이 오는 날에는 아들한테 고맙기까지 한다. 첫눈을 맞이하는 내 마음도 순간 아이처럼 순수해진다. 나는 기뻐 큰소리로 화답한다.
“아들, 첫눈이 왔다.”
“내 기도를 한번도 어기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뭇 진지한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첫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아이는 목도리와 방수장갑을 신발장 위에 준비를 해 놓았다. 눈만 오면 그것들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갈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은 셈이다. 첫눈 치고는 제법 굵직한 눈이라는 것을 베란다에서 확인하더니 아들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신발장 위에 있는 것을 들고 달려 나갔다. 그런데 아이는 금방 다시 들어온다.
“엄마, 땅에 눈이 없어.”
쌓인 눈으로 눈싸움을 하기에는 첫눈이 오고도 한참 눈이 더 와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아들은 무척 실망했다.
첫눈을 맞이한 후 아이의 아침 인사는 당분간 이렇게 변할 것이다.
“엄마 눈은 언제 쌓여요?”
언제부터인지 내게 눈은 아이들이 느끼는 것처럼 맛있지도 않고 재미있는 장난감도 아니였다. 그저 현실에 불편한 점을 주는 애물단지 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은 교통체증의 원인이 되어 출퇴근 길을 전쟁통으로 만들어 버린다. 빨래는 마르지 않아 안방 빨래줄에 젖은 옷이 진을 치게 된다. 빙판길에 넘어질까봐 바빠도 엉금엉금 걸어가고 제 아무리 잘난 사람도 눈 앞에서는 쩔쩔맨다. 어떤이는 눈을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라 했는데 나는 하늘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 싫다.
그렇더라도 매번 첫눈이 오면 애틋한 연애시절로 순간 돌아간다. 결혼 15년째인 우리부부는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우리에게 정말 불타는 사랑이 있었을까, 어슴푸레한 기억만 남는다. 그래도 첫눈이 오면 남편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나는 천상 여자이다. 남편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답장은 빨리 보내준다.
-너는 눈이 그렇게 좋냐!
혀를 끌끌 차며 철없는 아내를 야단치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낭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을 탓해 무엇하리.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아니라 원숙한 여인의 향기를 내뿜는 국화가 되어야 할 나이인데 첫눈만 오면 여고생이 되는 고질병이 도진다.
자연은 순리대로 흐르고 인간은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택한다. 역행하며 살기가 어렵다고 어줍잖은 변명을 해본다. 그렇더라도 맛있는 첫눈을 느끼지 못할망정 멋있는 첫눈을 바라보는 여유는 갖고 살고 싶다.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보석같은 순수를 간직하고 살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마음으로 산다면 나이를 먹어도 두렵지 않을 것이요, 혹한 추위에도 진정 따뜻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아울러 올 겨울 첫눈도 기대된다. 어떤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담겨질까. 잘 간직하여 내년에도 얼음과자처럼 오도독 오도독 깨물어 먹으면서 여름을 이겨내야겠다.
<2006.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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