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찜>
병원에서 퇴원한 친정엄마가 요즘 식사를 거의 못하고 계신다. 약을 드시기 위해 두 숟갈 정도 겨우 드시는데
시일이 꽤나 오래간다. 입원했던 이참에 엄마는 동네 이웃 이모들과 함께 한잔씩 했던 술도 끊으셨다.
"엄마, 밥맛 없는 것도 금단현상이 아닐까~ 내 몸에서 계속 술을 보내달라고 시위하는 거야."
편하게 마음 먹으라고 엄마한테 얘기드렸지만, 계속 식사를 못하시니 얼굴이 핼쑥해졌다.
"언니, 엄마가 토요일 우리집에 오시면 밥을 두그릇씩 드셨는데, 요즘은 통 못드셔. 입맛이 쓰대."
주말 주일 1박2일동안 여동생 집에 머무는 엄마를 지켜본 동생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면 엄마 모시고 엄마가 좋아하셨던 [붕어찜]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언니, 고마워 그럼 내가 붕어찜 식대는 송금할테니 모녀지간 둘만의 데이트 잘 하시오~"
"엄마는 큰딸과 함께 하는 데이트를 제일 좋아하시더라."
"아니여. 내가 사 드릴테니 송금하지 마라."
"이번주는 내가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러니 언니가 엄마 맛있는 것 사 드리소."
여동생은 엄마가 나를 더 좋아한다며 은근히 기분 좋은 질투성 발언을 간혹 한다.
"엄마는 언니가 전화하면 더 좋아하고, 언니랑 식사하기를 더 좋아하고, 언니랑 어디를 같이 가는 것을 더 좋아해."
비가 오락가락한 어제~퇴근후 엄마집으로 모시러 갔다.
밥맛을 되찾아 드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로 [붕어찜]를 드시게끔 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는 [붕어찜] 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 엄마를 위해 내 한몸 희생(먹어주기로)하기로 했다.
칼 퇴근을 하고 6시 10분쯤 사무실에서 엄마집으로 향하는 사거리
저 왼쪽 [함흥냉면]이라고 써진 식당에서 간혹 엄마랑 삼겹살 데이트를 했다.
그 식당이 엄마집과 우리사무실의 딱 중간지점이라 데이트 장소로 딱이였다.
신호등의 불빛만 보이는 대낮처럼 환한 오후 시간인데 차안에서 찍은 사진은 어둡게 나왔다.
지팡이를 짚으시고 계단을 내려오시는 엄마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나는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렸다. 비가 곧 쏟아지려고 했다.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자연의 바람을 시원하게 맞게 하고 싶어서
뒷 창문을 내려드렸더니, 시원하게 창밖을 내다보신다.
룸 미러로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 머리카락이 올백이 되도록 바람은 세차게 불어댄다.
이런 바람도 간혹 맞으면 좋다.
'엄마는 오랜만에 큰딸 차를 타고 엄마가 좋아하는 [붕어찜] 먹으러 가니 좋으시겠지.'
자주자주 이런 시간을 갖자,고 혼자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위해 여기저기 땅을 파고 비가 내려 파인 도로에 물은 고이고 그야말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엄마와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니 이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다.
"엄마, 진짜 오랜만에 오네."
"아따, 너는 길도 잘 찾아온다."
엄마집에서 출발하여 우리사무실을 지나 우리집을 지나 담양 가는 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달려 식당 입구에 도착하니
엄마는 대견하다는 듯이 나를 칭찬해 주셨다.
어라, 붕어찜이 예전에는 1인분에 14,000원 이였는데, 가격이 내렸다.
그런데, 내린만큼 반찬이 좀 부실했다. 공기밥은 추가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붕어찜]을 드시면 되니까.
2인분을 시키니 붕어가 4마리 나온다. 엄마는 1개 반을 드시고 나는 겨우 1개를 먹었다.
남편이랑 왔으면 투정부리며 먹지 않았을텐데...전적으로 엄마를 내가 모시는 입장이라 맛있다고 부축이며 잘 먹었다.
"엄마, 옛날 맛있게 드셨던 기억을 되살려 좀 드셔보세요."
엄마는 겨우겨우 뼈를 발라가며 드신다.
드시는 모습을 보니 그때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엄마가 예전에 좋아하셨던 이 음식까지 못먹겠다고 했으면 나는 엄청나게 서글펐을 것이다.
"엄마, 천천히 많이 드세요."
부기가 덜 빠진 엄마 얼굴. 그동안 식사를 거의 못하셔 얼굴이 핼쑥해지고 힘이 없어보였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추억은 몸속의 난로와 같다.
언제든 되살아나 몸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때문이다. 아니다.
추억은 가슴 깊숙이 고인 눈물샘이다.
이따금 목울대를 타고 올라온 온몸을 아프게, 슬프게, 눈물짓게도 하기 때문이다.
-[잠깐 멈춤] 고도원 / p174 중에서
엄마가 공기밥 반그릇을 겨우 비우고 누룽지를 조금 드셨다.
붕어 1마리하고 절반을 겨우 드시고 숟가락을 놓으셨다.
"엄마, 뭔 곳까지 이왕 왔으니 집에서 드시게 1인분 더 포장해 주라고 할께~"
항상 여기에 오면 식사하고 돌아갈때 붕어찜을 포장해갔다.
그러면 엄마는 동네 이모들 다 불러서 우리딸이랑 먹고 포장해 온 것이라고 자랑하며
술 한잔씩 드셨던 그 붕어찜이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음식,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뭐 좋아하세요?"
물어보면 특별히 없다거나, 아무거나 이런 대답, 별로인데,
엄마는 [붕어찜]이 있어서 좋다.
세월이 많이 흘러,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실때 나는 [붕어찜]하면 동시에 엄마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붕어찜]은 눈물이 나서 두번 다시 먹지 않을 것이다.
모녀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우리집을 지날때쯤...
"아가, 여기서 내려주라. 나는 택시타고 갈란다. 네가 또 우리집까지 왔다 가려면 힘드니까..."
"아니, 엄마 오늘은 그냥 집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엄마를 모시고 사무실을 거쳐 엄마집으로 향하는데, 엄마와 나의 데이트 장소엔 어둠이 내려
불을 밝혔다. 다음달에는 우리의 아지트인 이곳에서 만나 삼겹살과 냉면을 먹어야겠다.
엄마를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막 돌아서려는데, 그때 비가 쏟아진다.
하나님도 우리의 데이트를 지켜보셨을까. 엄마가 비 맞지 않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한 것을 보시고
비를 내려주셨다. 혹여 오고가는 길 불편하지 않도록 큰 배려를 하신 것 같다.
.
.
.
따르릉~ 삐리릭~
마트에서 장 본 비닐봉지랑 어깨가방이랑 손가방이랑 우산이랑 줄래줄래 들고 우리집 현관문을 겨우 열고 들어오는데...
집 전화가 몇번 울리더니, 내 핸드폰에서 불이 난다.
"비가 많이 오는데, 집에 잘 도착했냐?"
엄마는 그새 딸이 걱정된 것이다.
"네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에 또 맛난 음식 먹으러 가게. 편히 주무세요. 그리고....엄마 사랑해.'
이 말이 하고 싶었는데, 차마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순수산 이야기[1] > 생각, 사유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의 간식 (0) | 2011.07.04 |
---|---|
가방과 웃음 (0) | 2011.07.01 |
장마철...파란하늘 어때요 (0) | 2011.06.29 |
별 닮은 유홍초 (0) | 2011.06.29 |
나비 닮은 풍접초 (0) | 201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