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가을햇살이 참 따사롭다.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딱딱한 벽을 타고 천천히 올라가는 저 담쟁이한테 배울점이 참 많다.
담쟁이가 "왜 나는 공기좋은 숲속에서, 다른 친구들처럼 흙에서 살지 못할까"라고 한탄만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냥 평범한 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담쟁이를 통해 뭔가 깨달음이 있는 것은
담쟁이는 담쟁이로 태어나서 비록 현실이 암담할지언정
힘들고 외롭고 세상으로부터 좌절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작지만 소신있는 희망을 전하고 있다.
우린
그런 담쟁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한 줄이라도 써보는 그런 하루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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