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 도종환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
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
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하던 어린 날도
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
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
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그 절망 아니었으면
내 뼈가 튼튼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이 내 멱살을 잡고 다리를 걸어
길바닥에 팽개치고 어둔 굴 속에 가둔 것도
생각해보니 영혼의 담금질이었다
한 시대가 다 참혹하였거늘
거인 같은, 바위 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
이렇게 작게라도 물결 치며 살아 있는 게
복 아니고 무엇이랴
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
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
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
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
병원에 아무리 다녀도 차도가 없고 면역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적막한 산에 들어가 5년을 살던 때~
시인한테 찾아온 시련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병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으며 쓴 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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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육신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신 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병이 생겼을까.
엄청나게 죄 짓고 산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생겼을까.
받아들이기 힘들고 억울하고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깊게 생각하면, 고난도 고통도 힘듦도 축복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굳이 성경말씀을 얘기하지 않아도 그 병으로 인해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소중한 것들을 그들은 볼 줄 안다.
건강한 사람들은 죽었다깨어나도 모를 그런 소중한 것들을 아픈 자들은 깨닫는다. 혜안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그들은 늘 감사가 넘치고 대충 살수가 없으며 부족하지 않게 사랑을 나누고 퍼주면서 산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을때 그때 그들은 모든 것을 갖게 된 것이다.
[축복]이라는 시를 음미하며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내게 오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육신의 고통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이 축복의 시를 통해 용기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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