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인생의 순리라면 거스리지 않고 따르리라

순수산 2012. 2. 16. 09:12

 

 

 

 

 

눈에서 빛이 나는 생기발랄한 20대에 대학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 내 눈에 비친 40대의 직장선배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매사 후줄근하며 나태해서 실망감을 줬다. 나의 20년 뒤의 모습도 저리 변할까, 아찔했다. 아니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의 긴장이 풀어져 머리손질도 흐트러지고, 나잇살이라는 말로 억지 변명을 하지만 풍선처럼 몸은 불어나고,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 화장도 못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회사에 온다는 것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40대에 들어선 나는 아이러니하게 그 선배들처럼 살고 있다.

 

 

 

결혼식 뷔페에 가면 할머니가 가방에 미리 챙겨온 비닐 봉지를 꺼내 떡이랑 쿠키랑 고기랑 바리바리 싸서 가방이 터질만큼 구겨 넣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나이 먹어도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남은 음식이 아무리 아까워도 쿨하게 미련을 버리고 나와야지 젊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며칠 전 나는 1인분에 5만원하는 회집에서 열명의 직원들과 함께 회식을 했다. 10여 가지가 넘게 나오는 고급코스 요리인데 회가 나오는 두번째 코스 요리를 먹다보니 배가 벌써 불러왔다. 원래 먹는 양이 적은 편인데, 계속 나오는 요리를 눈으로만 시식하고 손도 대기 힘들만큼 배가 불러서 심히 안타까왔다. 한 상에 같이 앉은 직장후배가 음식이 아까우니 주인장한테 포장해 달라고 얘기하자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안타깝지만 내가 세운 철칙이 있기에 그것만은 안하고 싶었다. 그리고 옆 상에서는 남직원들이 계속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는데, 끝나는 분위기도 아닌데 음식을 싸주라는 것은 실례라 생각했다.

 

 

 

손도 대지 않는 음식이 상에 쌓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 쓰레기로 간다면 주방장이 얼마나 슬퍼할까, 우리나라 음식물 쓰레기가 이래서 산더미처럼 쌓인다는 것과 저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가면 가족들이 맛나게 먹을텐데,라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어지러웠다. 나는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주방장한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주방장님, 정성들여 만들어 주신 음식이 많이 남아 너무 아까운데, 2개로 포장해서 주시면 안될까요.”

“네~ 손님 포장해 놓을테니, 나가실 때 꼭 챙겨가세요.”

 

 

 

그 횟집을 나오는데, 계산대에 포장 두개를 만들어 놓았다. 하나는 직장후배를 주고 하나는 내가 들고 왔다. 뭐, 체면 좀 구기면 어떤가. 나는 오늘 체면 좀 구겼지만 환경보호를 했고, 포장해 간 도시락 세 개를 펼치니 식탁이 다 화려했다. 가족한테 맛난 음식을 줄 수 있어서 흐뭇했다. 건강한 대한민국 가정주부라면 얼마든지 이렇게 변할 수 있다. 음식점마다 ‘음식물 제로’ 운동에 동참하며 남은 음식을 기꺼이 포장해 주기에 주눅 들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린 당당히 포장해 주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이런 변화도 인생의 순리라면 거스리지 않고 순종하며 따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