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요즘 우리부부는 제2의 연애시절을 보내고 있다.
언젠가부터 주말이 되면 울황제랑 무엇을 할까, 일단 설레게 된다.
결혼전 제1의 연애시절에는 울황제가 어디로 데이트 코스를 잡을까, 고심했다면
지금은 쬐끔이라도 젊은 내가 코스를 잡는다.
ㅎㅎㅎ
부담없는 주말에 우리는 서로 도와서 집안일을 한다.
집안 청소를 깨끗하게 해놓고
울황제는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물걸레로 닦고
(우리집은 정확하게 집안일이 나눠져 있다)
베란다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마늘을 거실로 갖고 와 둘이 사이좋게 까고
"자기야~ 마늘을 찧으려고 하니 어깨가 아파~ 자기가 도와주면 참 좋겠다."
(손이 오글아 들어도 어쩔수 없다. 우린 일상이니까..ㅎㅎ)
나는 유독 팔의 힘이 약하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울황제의 도움을 받는다.
남편이 깔끔하게 마늘까지 찧어주니 주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는 오늘 세운 계획을 전부 달성할 것 같다.
"자기야~ 비가 곧 내리려고 날씨는 꾸무룩하지만 우리 오랜만에 한새봉에 갔다가
점심 먹고 오후에는 다운받은 [건축학개론] 영화나 보자."
남편은 두말없이 내 의견을 존중해줬다.
나는 이런 남편이 친구처럼 편안해서 좋다.
참깨꽃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우산을 하나씩 챙겨서 오르던데,
우리는 비가 오면 맞기로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행을 했다.
우린 둘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한 뒤로 한새봉은 아주 오랜만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나는 향긋하고 풋풋한 풀냄새를 맡고 싶었다.
비가 곧 쏟아질것 같아 습하고 후덥지근했지만
온통 초록색인 짙은 녹음이 내 눈의 피로를 풀어줬다.
산행하는 2시간 동안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눌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도라지꽃
한새봉의 봄은 진달래, 탱자꽃, 아카시아... 정도 꽃을 본 것 같는데,
한새봉의 여름은 어떤 꽃들이 피었을까, 특별히 생각난 것이 없어서
우린 산행코스를 다르게 잡았다.
그랬더니 들판의 꽃들이 내 눈길을 유혹한다.
농부들은 땀흘리며 밭농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꽃구경하고 사진찍고 편안한 산행을 하고 있으니
웬지 우리의 존재가 게으른 배짱이 같았다.
활짝 핀 호박꽃
산 중간정도 오르는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좀 힘든감도 있었지만 그 힘듦이 정신을 청소한 것 같아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땀흘리기에는 아주 최고로 적합한 날씨이다.
호박 꽃봉우리
어쩜 이 모습도 참 예쁘다.
만개하려고 이 녀석도 보이지 않게 날마다 아주 서서히 움직이고 있겠지.
활짝 필 날을 위하여
토란잎 위의 빗방울
토란잎을 이리저리 움직이니 한 방울의 빗방울이 데롱데롱 굴러다닌다.
참 신기하다. 토란잎의 재질은 혹시 기름 성분이 들어있을까...
둘은 도저히 섞이지 않는다. 겉돈다.
1시간동안 쉼없이 올랐더니 드디어 정상이다.
이제 한숨을 돌린다.
아~ 그런데 교회 아는 집사님 두분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다.
"안녕하세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계세요. 사진 찍어줄께요~"
내가 좋아하는 두 집사님의 뒷모습을 찍어줬더니
한분은 이상하게 나온다고 찍지 말라고 하고
한분은 이왕 찍을라면 앞모습을 찍어달라고 한다.
서로의 삶이 바빠 자주 교제는 못하지만 우린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다.
예전에 울황제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때
"000의 일이라면 나는 무조건 찾아간다."
남편 병문안까지 안오셔서도 되는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했더니
나를 좋게 보셨던지 저런 말씀을 하셔서 그때 기분이 참 좋았다.
사진을 자주 찍어본 사람은 자연스런 포즈를 잡는데
자주 찍지 않으면 저 집사님처럼 어색하다. ㅎㅎ
사진 찍을려고 계획이라도 한것처럼 오늘 의상이 아주 판타스탁하다.
우린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고
울황제도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솔잎(?)
우린 맞벌이라 각자 회사생활에 대해서 얘기하고
귀한 우리의 작품 아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신앙인으로서 참된 진리에 대해 얘기하고
친구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참 다양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결혼전 1년 반동안 연애를 했을때도 물론 좋았지만
제2의 연애기간이 돌아온 지금도 그때못지않게 참 좋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비도 맞고 땀도 흘리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는데, 왜 그렇게 감사한지...
(물을 쓸때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감사~)
점심을 먹은 후 한숨 잔후
[건축학개론] 영화를 둘이 봤다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음에
함께 공감을 나눌수 있음이
당연함이 아니라
감사와 감동으로 전해진 하루였다.
나도 무궁화라고 하는데..어째 인정하기 힘든 꽃이다.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어떤 모습으로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지는
순전히 내 몫이다.
'순수산 이야기[1] > 생각, 사유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미는 네 안에 숨겨진 ‘미지의 대륙’이야 (0) | 2012.07.19 |
---|---|
이직 시기? 너의 1만 시간에게 물어봐 (0) | 2012.07.13 |
출출한 오후, 간식 드세요~ (0) | 2012.07.11 |
"언니~ 만드는 것 쉬워~" (0) | 2012.07.09 |
정리의 힘 (0) | 201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