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선생님을 가르치는 책벌레 조카

순수산 2013. 7. 5. 13:34

선생님을 가르치는 책벌레 조카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민기는 일명 책벌레다. 조카 집 거실은 도서관을 방불케할만큼 책들로 도배되어 있다. 밥 먹을 때도 책보고, 화장실 갈때도 책을 갖고 다니는 시도 때도 없이 책만 쳐다보는 조카에게 부모들은 책 좀 그만 보라고, 항상 야단을 친다.

“언니, 민기한테 글쓰기 좀 가르쳐 주소. 일기랑 글쓰는 것은 통 정리가 안되네.”

여동생의 부탁을 받고 퇴근 후 조카 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 1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초등 저학년이라 일기쓰는 것과 학교 숙제인 책 읽고 독서록 쓰는 것과 소년일보의 기사를 출력하여 읽고 생각정리를 하는 정도이다.

 

며칠 전 [지구의 일꾼 꿀벌이 사라진다]라는 기사를 출력하여 내가 대략 읽은 후 요점 정리와 생각 정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조카한테 읽혔다. 공책 왼쪽에 스크랩 한 후 공책 오른쪽에 정리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조카는 공책 한 장에 기사를 요점정리하고 다른 한 장에는 스크랩한 기사에는 나와 있지도 않는 “일벌은 꿀벌의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벌이다. 일벌이 없으면 엉망이 되고, 일벌은 집을 새로 만들고 밀랍이라는 액체를 발라 튼튼하게 한다~” 를 시작으로 일벌과 여왕벌과 수벌에 대한 특징을 상세하게 적은 것이다. 나는 그날 꿀벌 박사 조카한테 부연설명까지 들어야 했다.

 

 

 

 

사실 나는 밀랍이 뭔지도 몰랐다. 사전 검색을 해보니, 벌집을 만들기 위하여 꿀벌이 분비하는 물질이라고 나온다. 완전 선생님의 굴욕 사건이였다. 호기심천국 조카는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단어와 영어가 나오면 바로 물어본다. 감사하게도 이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해 설명해 줄 수 있다. 조카가 중학교 2학년이 아니여서 천만다행이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야, 내 상식으로 가르치면 되겠지 싶었다. 책벌레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책 좀 읽었고 글 좀 썼기에 만만하게 본 것이다. 과학도와 의학도가 즐겨본다는, 책 무게만도 엄청난 [인체 완전판]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녀석이다. 의사가 꿈인 조카가 의학 전문용어를 써가면서 얘기할 때는 나는 의사선생님 앞에 환자가 된다.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그대로 빨아들이는 조카와 딱딱하게 굳어버린 40대 중반인 나는 요즘 가르치러 가서 배우고 올때가 많다.

 

“민기야,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우산을 앞쪽으로만 쓰고 오면 안된다. 위험해!”

요즘 비가 계속 오길래, 학교 등하교 길에 우산이 시야를 가려 혹여 위험할 수도 있길래 한마디 했더니,

“저는 괜찮은데요. 제 우산은 투명우산이라 앞으로 써도 다 보여요.”

맞아! 아이들한테는 하얀 비닐투명우산을 사용하면 되겠구나, 나는 왜 몰랐지. 나 오늘도 조카한테 한 수 배우고 돌아왔다.